2025년 1월에 읽은, 새해 첫 책이다. 이상하게 2025년을 여는 첫 독서는 이걸로 하고 싶었다.
2024년의 마지막 독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였으니 새해를 사이에 끼고 샌델의 책을 두 권 연속 읽은 셈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이 책은 2024년에 읽은 마지막 책이 되었다. 그리고 이미 올린 글이지만, 2025년을 여는 첫 독서는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이 되어서 마이클 샌델의 책을 연달아 읽었다. 공정하다는 착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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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란 결국 잘된 것도 내 덕, 망한 것도 내 탓이라는 것- 즉 모든 게 개인의 책임이라는 걸 이 책을 읽고서야 깨달았다.
더이상 능력만으로 되는 세상이 아닌데- 라고 나도 진즉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능력 외 요인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살다보니, 능력 외 요인을 중시하는 나마저도 그걸 능력과 동급으로 보지 않았다는 자기반성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오고 한참이 지났는데 트럼프가 다시 당선됐다는 건 미국 민주당이 그만큼 자기 반성이 없었다는 뜻으로 보인다.
서문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결말에 이르러서야 내 생각이 샌델의 생각과 비슷하구나 라는 걸 느꼈다면, 이 책은 다르다. 서론에 나온 내용부터 내가 수년전부터 동거인에게 얘기했던 내용이다. 37 페이지를 보자.
능력주의적 대입이 갖는 특질은 뚜렷해 보인다. 정당한 스펙으로 입학한 사람은 자신의 성취에 자부심을 가질 것이며, 이것은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 역시 문제가 있다. 그러한 입학이 헌신과 노력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정말로 오직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그들이 스스로 해내도록 도와준 부모와 교사의 노력은 뭔가? 타고난 재능과 자질은 그들이 오직 노력으로만 성공하도록 했을까? 우연히 얻은 재능을 계발하고 보상해줄 수 있는 사회에 태어난 행운은?
이는 숱한 업계 2세들을 보면서 했던 생각이기도 하다.
“정말로 오직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그가 해내도록 환경이 있었고 주변의 도움이 있었는데?”
1장 승자와 패자
p50 / 미국인의 70퍼센트는 '가난한 사람이 자력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유럽인은 35퍼센트만이 그렇게 여긴다. 이런 사회적 이동성 관련 믿음은 미국이 주요 유럽 국가들에 비해 왜 그처럼 복지제도에 소극적인지 설명해준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 이동이 가장 잘 일어나는 국가들은 평등 수준 또한 가장 높은 국가들인 경우가 많다.
위 내용은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준 부분이라 인용했다. 유럽은 계층이동이 쉽지 않다고 들었고 그래서 이미 체념했으므로 굳이 대학을 안가려고 해서 우리나라보다 경쟁이 덜한 거란 얘길 들은적 있다. 그래서 복지로 그들을 달래는 거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 샌델의 주장대로라면 내 생각과 반대다. 복지가 있어 그나마 계층이동을 할 수 있는 거고 그 가능성도 미국보다 높은 것.
샌델은 1장에서부터 책 말미까지 자신의 "운"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운"은 나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내가 운이 좋아서 "노력 대비 좋은 결과"의 현재를 살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 문과였고 교차지원으로 공대를 갔는데 내가 대학 입시를 치룬 그 다음해부터 교차지원이 어려워졌다. 또한 당시로선 취업하기 좋은 학과를 나와서 마침 채용을 많이 하던 때에 취업을 했다. 원래 하던 업무를 건강 상의 이유로 하기 힘들어졌을 때 마침 공기업 채용 인원을 늘려서 생각보다 쉽게 들어갔다. 토익 점수 830을 만든 건 내 노력이지만 그래도 그 점수로 공기업을 들어가기 쉽지 않은데 엄청나게 운이 좋았던 셈이다. 하지만 다녀보니 기업문화가 맞지 않아 다시 나오게 됐는데, 또 다시 운좋게 나 같은 경력을 가진 사람을 원한 회사가 있어 쉽게 재취업했다.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했지만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던 건 마침 그럴 기회가 주어지는 운이 따른 덕이라는 거다. 온전히 내 능력으로 된 건 그 기회를 잡았을 때 성과를 낸 것 정도 되려나.
샌델은 이 책 내내 미국의 민주당을 소위 '후들겨 팬다'. 그런데 남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야당도 비슷한 길을 걸을까 걱정이다. 우리나라의 민주당 예를 들자면 이명박에게 그리고 윤석열에게 패할 때의 민주당은 딱 그런, "우리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지지하는 당이야" 하는 오만함이 보였다. 샌델의 지적대로 다양한 사람의 입장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걸 어느 정당이든 잊지 말길 바란다. 예를 들면 태극기부대가 왜 태극기부대가 됐는지, 왜 특정 당을 지지하지 않는지-단순 색깔론이나 지역감정 말고, 외로움과 소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분석했으면 한다.
2장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능력주의에 대한 반론에서 피어난 종교개혁이 결국 능력주의 윤리의식을 가져오게 됐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나도 오래 전에 읽었지만 단순 개신교가 자본주의와 어찌 연결이 되었는가만 생각했을 뿐 (그리고 당연히 자본주의=능력주의라고 생각한 영향도 있다) 이런식으로 흘러갈 줄은 몰랐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p72~76를 참고 바란다.
행운이 아니라 고된 노력으로 성공한다는 아메리칸 드림
생각해보면 이런 점에서 미국이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건 당연하고, 우리나라도 전후 그런 식으로 성공했기에 당연히 능력주의가 만연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내가 잘된 건 내 노력 덕이고 니가 안된 건 노오-력이 부족해서’ 식의 정글이 되어버렸다. 당연히 복지에도 인색하다. 7080 시대는 몰라도 현재는 노력'만'으로 되는 시대가 아닌데 말이다.
p86에 언급된 건강보험 사례를 보면서는 번영 복음식 능력주의가 가장 잘 표현된 곳이 사설 실비보험이구나 느꼈다. 니가 건강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아픈 거니까 보험료를 더 내라- 이니까.
3장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p108 / 이런 과도한 스트레스와 힘겨운 노력을 겪은 뒤에 얻은 것이,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며 성공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라고 여겨지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나는 그렇게까지 고생하지 않고 얻어서 내가 운이 좋은 덕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 덕도 있는 거 같다.
반대로 (주변 환경, 타이밍, 주어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 배경 등 무시하고) "내 능력으로 얻은 거거든?"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샌델 말대로 저런 경험을 했을수록 노력 외 요인을 무시하게 되는 것 같다. 이는 경험적 소견이다.
p123 / 트럼프와 브렉시트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포퓰리스트 정당들에 표를 던진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은 사회적 상승에 대한 약속보다는 국민 주권 원칙의 재확인, 국가 정체성과 국가적 자존심 등의 강조에 동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장주도적 세계화를 환영하면서 그 이익 대부분을 챙기고 노동자들을 외국 노동자들과의 경쟁에 내몬 장본인들, 동료 시민들보다는 세계 각지의 엘리트들과 더 가까워 보이는 능력주의 엘리트, 전문가, 전문직업인 계층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여기서 나의 의문: 포퓰리스트 정당에 표를 던진 노동계급인들은 국가와 나를 동일시한 것인가? 내가 잘되긴 틀린 거 같고 능력주의 엘리트들은 꼴보기 싫으니 조국이 위대해지는 걸로 대리만족하겠다 라는 생각인 것인가?
이 의문에 대한 해소는 책 후반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p127 / "앞서가는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란 질문에, 미국인들 대다수(73퍼센트)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가 굳건히 버티고 있는 셈이다.
p128 / '우리 스스로가 운명의 주인'이라는 믿음이 굳건한 미국은 사회민주주의 유럽보다 덜 관대한 복지국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자신의 삶이 자기 통제 밖의 변수에 더 많이 휘둘린다고 생각한다.
p129 / 노력과 근성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적 믿음은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수십 년간 미국인들은 자기 자녀들이 자신들보다 경제적으로 나은 삶을 살기를 기대할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2장에 내가 붙인 코멘트가 거의 그대로 여기 있어 놀랐다. 아니 당연한 전개일지도. 우리나라는 정말 미국과 똑닮았구나 싶으면서, 그 생각의 뿌리가 이미 비슷하니 유럽처럼 될 순 없으려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개신교가 많았던 이유도 미국의 영향인가 싶기도 하고…
4장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p151 / 학력주의 편견은 능력주의적 오만의 한 증상이라 수 있다. 최근 수십년 동안 능력주의에 더욱 물들게 되면서, 엘리트들은 출세하지 못한 사람들을 깔보는 버릇마저 들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도 한둘이 아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고졸도 취업 가능하고(사실 이게 당연히 그리 되어야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장'을 달게 된 경우가 자주 보이는데, 학력 높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더 많이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졸이면 은근 무시하는. 본인이 대학원까지 나왔으면 그에 마땅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회사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유형이다.
p160 / 그들에 따르면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는 보다 못한 교육 수준의 대중에 비해 편견이 결코 적지 않다. 다만 편견의 대상이 다를 뿐이다. 더욱이 엘리트는 그런 편견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p162 / 지난 50년 동안 의회는 인종, 민족, 성별에 있어서는 더 다원화되었다. 그러나 학력과 출신계층에서는 훨씬 일원화되었다.
p164 / 좋은 통치는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을 필요로 한다. 공동선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함양될 수 없다. (…) '최고의 인재들'이 저학력자 동료 시민들보다 통치를 잘한다는 생각은 능력주의적 오만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다.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인종, 민족, 성별 뿐 아니라 학력과 출신계층도 다양해야 폭넓은 정책을 펼칠 수 있음을.
우리나라만 봐도, 현대사를 보면 학력과 무관하게 기본적으로 공동선에 대한 철학이 있는 대통령들이 정치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p168 / 민주당이 전문직업인의 정당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는 미국에서 비대졸자 백인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외면하고 있다.
이쯤해서 드는 의문. 이전에 이어 여전히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인데, 미국 민주당이 삽질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왜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이 공화당을 지지하는지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민주당이 정권 잡고 나니 엘리트만 잘 되어서? 그렇다고 공화당이 정권 잡는다고 노동자계층이 좋은 대우를 받는가? 그게 아닐텐데 왜지? 대놓고 엘리트를 밀어준 오바마가 그들을 배신했다고 여겨서?
이때까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5장 성공의 윤리
이 장에서 말하는 능력주의의 문제는 익히 알고 있다. 이 책을 보기 전부터 생각하던 부분이기도 하고 앞서 언급된 걸 다시 얘기하는 부분도 있다.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92페이지 마이클 영의 주장을 보자.
p192 / 마이클 영은 누군가의 사회적 지위가 우연한 이유로 정해짐을 성찰하는 것이 꽤 득이 된다고 보았다. 덕분에 승자와 패자 모두 자기 인생은 자업자득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현행 계급질서를 마냥 옹호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는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역설적인 효과를 준다. 직업과 기회가 능력에 따라 배분되더라도 불평등은 줄어들지 않는다. 불평등 구조를 능력에 따라 재구축할 뿐이다.
능력주의가 완전히 평평한 운동장에서 실현된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갑자기 확 느껴진 것이다. 무한 경쟁 세계에 들어간다는 거다.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받고 공정한 시스템으로 능력을 평가하는데 재능마저 비슷하다면? 더 나은 성과를 얻기위해 피 터지는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경쟁이 일어나는 거고 결국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그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은 시스템 탓은 할 수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경멸적인 시선을 보내도 지금보다 더 할말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가 278 페이지부터 등장한다.)
p194 / 일부 능력주의자들의 경우 얼마나 안하무인인지, 낮은 지위의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조롱하곤 한다. (힐러리 클린턴이 2016년 유세 때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두고 “한심한 족속들”이라고 말했던 걸 떠올려보자) 엘리트에 대한 분노는, 능력주의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유발하는 자격지심과 합쳐진다.
이걸 보니 지난 장까지의 의문이 다소 해소되는 듯 하다. 결국 그들은 차악을 선택한 것일 수 있다. 비엘리트에 대한 혐오는 미국 민주당 측이 강하게 표현했고, 트럼프는 포퓰리즘 방향성을 택하면서, 맘에 안들어도 나에게 유리해보이는 쪽을 택한 것.
마침 232 페이지에서 명확하게 짚어준다
p232 / 오늘날 집권 엘리트에 대한 포퓰리즘의 반격은 대체로 자신들이 전문직업인들에게서 비대졸자라며 업신여겨졌다고 믿은 노동자들의 분노에 힘입은 것이다.
힐러리가 그랬듯 여기서 "그들은 무식해서 포퓰리즘에 낚인 거다" 식의 태도가 최악이다. 그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택한 것일 수 있다. 근데 우리나라도 소위 말하는 진보 진영에서 힐러리 같은 태도가 꽤 자주 보인다.
p243 / 세계화의 전리품을 나눠 갖지 못한 사람들의 높아져 가는 분노에 귀를 막은 채, 그들은 불만이 꽉 찬 공기 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녔다. 포퓰리즘의 반격은 그들에게 너무도 뜻밖의 상황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내놓은 능력주의 사회 시스템에 내재된 대중을 향한 모욕을 도무지 모르고 있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꼭 봐야 할 대목이다. 사람들의 분노에 귀를 막으면 결국 그 대가를 치루게 된다는 것.
6장 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p278 / 이제는 비록 새로운 엘리트가 세습적 위치까지 차지하긴 했지만, 능력주의적 특권의 되물림은 확정될 수 없다. (…) 그것은 개인의 분투 이상의 것을 요구하며, 대가로 주어져야 할 성공 이상을 강요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5장을 읽다가 갑자기 확 느낌이 왔던, 무한 경쟁-더 나은 성과를 얻기위해 피터지는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경쟁-에 대해 여기서도 언급이 나왔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조건이 좋은(부유한) 사람들이 유리하다는 것.
p283 / 심리학자들은 이 세대 대학생들의 보다 미묘한 정신적 문제점을 찾아냈다. 완벽주의라는 숨은 전염병이다. (….) 완벽주의는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병페다. "젊은이들이 끝도 없이 학교, 대학, 직장에 의해 선별되고, 구분되고, 등급이 매겨지는 과정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는 현대 생활의 한복판에서 싸우고, 실적을 내고, 업적을 이루도록 강요한다.“
문득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미국이랑 비슷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벌에 목매고 학점에 목매고 내가 힘들게 겪은 걸 남들도 겪게 하려 하고..
아메리칸 드림, 코리안 드림(개천에서 용난다 / 맹모삼천지교) 교집합 탓인가?
7장 일의 존엄성
p312 / 학력이 모자란 사람이 능력주의 사회에서 특별히 겪는 고통이 있다면 명예와 보상의 문제다.
"절망 끝의 죽음이란 저학력 백인 노동자에게 장기적이고 완만한 삶의 방향 상실을 나타낸다."
학위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격차는 죽음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질에서도 드러난다.
314~318 페이지에 나오는 ‘분노의 원인’을 보면 가난한 백인들의 특징이 나온다. 당연히 누릴 거라 생각했던 백인의 특권이 사라지고 자신들이 하위층임을 인정할 수 없으며 이에 분노가 엘리트와 유색 인종을 향한다.
여기서 가난한 백인들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2030 인셀남들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을 '미국 일이려니..' 하고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을 통해 미국과 우리나라가 능력주의를 과신하는 나라이고 그래서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든 생각.
미국에서 공부한 온 유학파들이 (연구와 배운 것을 전파하기 위해 돌아온 케이스는 제외하고) 왜 미국에서 취직하지 않고 굳이 우리나라로 돌아왔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나의 비약일 수 있으나, 미국에서는 기득권이 될 수 없고 결국 우리나라로 돌아와야 자신들이 기득권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서 아닐까? 똑같이 경쟁해도 미국에서는 상위 10%에 못들어가고 한국에선 가능성이 있음을 봐서 그런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을 갖고 340 페이지의 과세에 대한 언급을 보면 또 삐딱하게 보게 된다.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가 근로소득에 대한 과세보다 낮다는데 이거 우리나라도 이러지 않나? 라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이거 가만보니 기득권층들은 미국에서 지들 유리해보이는 거 갖고 오는 거구만? 그래서 상속세도 없애자 뭐 이런 얘기 하는 건가??' 라는 생각까지 뻗어나갔다.
8장 능력 그리고 공동선
p348 / 기회의 평등은 부정의를 교정하는 데 필요한 도덕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정적 원칙이며, 좋은 사회를 만드는 적절한 이상은 아니다.
p349 / 사회적 복지는 응집과 연대에 달려 있다. 그것은 단지 사회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일반 문화, 그리고 강력한 공동 이해관계 의식의 존재를 내포한다. 개인의 행복은 존엄과 문화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함도 요구한다. 반드시 출세할 것을 요하지 않는다.
좋은 말이지만 높은 수준의 일반 문화와 공동체 의식이 어디 쉬운가 ㅠㅠ 너무도 어려운 해법이다.
철학과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은 이런 걸 인지하지만 관심 없어하는 사람은 여전히 능력주의를 신봉할텐데..
책 내용의 마지막 353 페이지에서 샌델은 2장에서 언급한 것을 재차 강조하며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운을 인정하여 겸손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공적 삶으로 갈 수 있다고.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운을 인정하는 사람은 계속 인정하겠지만,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을 읽어도 난 세상을 여전히 염세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총평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와 달리 좀 불편한 책이긴 하다. 전자는 차근차근 이론들을 설명하며 자신의 의견에 독자가 다다르도록 유도한 측면이 있었다면 여긴 초반부터 저자가 화난 상태다. 왤캐 화냄? 뭐 이럴 수도 있다.
이 책의 호불호도 그래서 생긴 것 같다(제목의 번역 문제가 아닌 듯 하다). 능력주의 별로인 거 나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화내는 샌델과 희망 없어보이는 미국 민주당 보니 우리나라도 덩달아 걱정되고 그렇다고 능력주의를 대체할 무언가는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현실적으로 어려워보인다. 공동선 말이 쉽지...)
그저 앞날이 깜깜해보이고 그래서 책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여전히 염세적이 된다…
사족.
이 책을 읽고 얼마 후 트럼프 취임사를 보게 됐는데, 그걸 보니 왜 지지를 많이 받았는지 의문이 풀렸다.
모두가 제 국정 철학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히스패닉계, 아프리카 흑인, 아시아계 미국인 그리고 도시와 시골의 거주민을 막론하고 모두가 저를 지지해 주었습니다. 또한 7개의 경합주 시민들도 저를 지지했고 전체 유권자 수에서도 제가 수백만 표 이상의 득표 차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히스패닉 시민들과 흑인들에게 여러분께서 저에게 보여주신 전폭적인 신뢰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새로운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을 신뢰한 사람이라면 피부색 교육수준 상관없이 귀 기울이겠다 하고
외부에서 오는 이민자를 막아 강한 미국이 되겠다 하니
어느 계층이든 고루 지지할 수 밖에.
하지만 미국 밖에서는 다른 시선이 많은 것 같다.
이민자를 내쫓으면
그 다음은 백인을 제외한 나머지를 내쫓을 것이고
그 다음엔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에게 총구를 겨눌 것이라는 걸.
내돈내산이자 내가 쓴 독후감/서평 44편 :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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