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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다독 2025

소년이 온다 - 한강

by 김연큰 2025. 2. 13.

2025년 1월에야 이 책을 읽었다.

 

구매한지는 오래된 이 책을 읽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한 걸 익히 알고 있고,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죽었는지도 알고 있는데.

끔찍한 걸 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나로선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철학 책을 몇 권 읽고 나니 묘하게 용기가 생겨 읽기 시작했다.

 

주의: 소설 내용을 알고 싶지 않은 경우 아래 내용을 읽지 말아주세요.
이 글은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내용 전개 및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가 느꼈던 것을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소설 내용 및 결말 부분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1장 어린 새

1장은 집에서 읽었다. ‘너’라고 표현하는 게 특이하다고 느꼈다.

처음부터 이 상황은 민주화운동 중이며, 전남도청의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상황인 것을 눈치챘다.

 

또한 동호는 곧 죽을 거라는 예감도 들었다.

“해가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이는 전형적인, 곧 죽을 사람에게 하는 부탁이다.

 

총, 둔기 등 외상으로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표현, 시체가 썩어가는 표현…

생각보단 읽을만 했지만 역시나 괴로웠다. 그래도 꿋꿋하게 읽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가로 죽음을 의미하는 ‘흰’의 의미가 여기서 발견되었다. 11페이지부터 언급된 ‘흰 무명천’.

동호가 죽은 자에게 덮어주던 흰 무명천…

 

(참고: 내 경우 한강 작가의 작품을 <흰>으로 처음 접했다.)

 

 

2장 검은 숨

2장부터 회사에서 읽었다. (점심 시간에 읽었다는 의미다.)

 

여긴 1인칭 시점 서술이다. 그런데 그 1인칭이 누구인가가 특이하다. 1장에서 언급된 '검은 새'와 같은 혼이 된 '정대' 시점의 이야기다. 1장에서 ‘너’라고 부르던 건 동호 친구이자 동호네 사랑채에 세들어 살던 정대였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든 의문. 혼은 어떤 모양일까. 1장에서 검은 새라고 했지만 사람 생김새가 다 다르듯 혼도 다 다르게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1장과 시간은 연결된다. 1장 시작부터 비가 올 것 같다고 시작하다가 24페이지에 차가운 혼의 눈물이 떨어진다. 그리고 60페이지에서 ‘그 밤’이, 오후에 비가 몹시 내린 날이 온다.

비가 그치고 맑아진 후 기어코, 예상대로 동호도 죽었다. 그 밤이 도청에 총알이 쏟아지던 때였나.

1장에서 이미 암시가 있었다시피 정대의 누나인 정미도 죽었구나 싶은데, 정미와 동호 그 둘은 언제 어떻게 왜 죽었을까…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동호의 죽음은 글 내용으로 상상할 순 있다.

 

2장은 죽은 자가 화자라는 새로운 표현 방식에 흥미로운 한편 머릿속에 많은 상상을 자아냈다.

 

 

3장 일곱개의 뺨

3장도 회사에서 이어서 읽었다.

 

이번엔 ‘그녀’의 이야기다. 무대는 서울인 거 같다.

대체 누구지 싶었는데 1장에서 나왔던, 도청에서 시체를 정리하던 ‘은숙’이다.

트라우마로 고생하고, 그런데도 꿋꿋이 사회에 저항하는 책을 내는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공연과 출판이 하나의 프로젝트나 다름 없던 상황에서 준비하던 책은 검열을 당해 출판이 사실상 어려워지고

하지만 공연은 기어이 준비한다고 하고

어찌되나 했더니 준비하던 책을 다른 번역가의 이름을 써서 기어이 출판하고,

그렇게 올라간 공연에서, 책을 읽기도 전에 많이 접했던 바로 그 대목이 나온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진행되는 공연을 읽다가, 그 장을 다 읽을 무렵 102페이지에서 감정이 차 올라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책을 덮었다.

마침 점심 시간이 끝나기도 했고 무엇보다 더 이상의 감정 노출을 회사에서 하고 싶진 않았다.

나중에 든 생각인데, 아마 3장만 따로 떼어 단편으로 나왔어도 충분했을 완성도라 느꼈다.

 

퇴근길 및 집에서 4장과 5장을 읽었다.

 

4장 쇠와 피

4장은 화자가 누군지 모른다. 1인칭 시점으로, 누군가와 대화하듯이, 썰 풀듯이 얘기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한 이야기를 한다. 고문, 폭력, 폭언, 식사와 배변 욕구에 대한 제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하지만,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김진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김진수는 1장부터 등장했던 인물이다. 정확히는 '진수'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그래서 김씨인 줄은 몰랐다. 외모도 몰랐다. 하기사 남자 중학생인 동호 입장에선 굳이 진수의 외모에 관심을 둘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진수가 다시 등장한 건 3장이었다. 88페이지, 여자들을 보내려고 설득하던 모습, 89페이지 은숙의 영혼이 부서진 때라고 언급한 그 때.

그는 그렇게 도청에 돌아갔다가 저항했고, 잡혔고, 고문당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당했고

우여곡절 끝에 석방이 되었지만 피폐해진 몸과 정신으로 무엇을 할 수 없었다.

 

이전의 다른 독후감에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내 경우 한 회사에서 직장생활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을 겪었고, 그러면서 내 정신 건강이 많이 무너졌고, '꽤 많이 회복되었다' 느낄 때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지 몇 달의 정신적 괴롭힘의 영향도 이러한데 생사를 오가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온갖 모멸감을 느끼다가 나왔을 때. 당연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p114, 양심,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결과가 이렇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무력감은 어떠했을까

양심이 무섭다는 게 이토록 부정적인 의미일 수 있는 것인가

 

p132, 내가 이 사진을 설명해야 합니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취재자들과 경험자들의 진술로 5월의 많은 것이 밝혀졌지만 그걸 말하는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진정 공감한 부분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면서 내용을 정리해야 했는데 그 고통은…

사실 난 안좋은 일은 잊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서 기억을 더듬는 거조차 매우 괴로웠다.

 

4장의 마지막에서 알게된 것.

동호는 그렇게 죽었다.

동호는 형들이 시킨대로 상황이 정리된 후 무기를 버리고 손 들고 일렬로 내려오다 죽었다.

 

4장은 아마도 많은 독자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게 하지 않았을까.

 

p134.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는 부정적인 걸 꽤 잘 잊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회사에서 겪었던 일은 그렇지 않다. 분명 그 회사에서 좋은 일도 있었는데 그것들은 서서히 잊혀져가고, 인간답지 못하게 지냈던 그 기간만 더 선명히 남고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처절하게 와닿았다.

 

 

5장 밤의 눈동자

1장에서 나왔던, 은숙과 함께 도청에서 시체를 정리하던 연두색 셔츠를 입은 '선주'가 등장한다.

2인칭 서술이다. 선주는 ‘당신’으로 표시된다. 여기서 또 알게된 것. 성이 임씨였구나.

 

4장과 이어진다. 선주도 진술을 요청받았다. 아마 5월 민주화운동에 대해 논문을 쓰는 윤씨라는 사람이 있나보다.

정미와 선주는 건너 아는 사이였다. 그 사이에 성희 언니라는 이가 있었고.

1장에서 정미가 공부를 하려고 했던 건 의사가 되고 싶어서였다. 선주는 현실적으로 가망이 없을거라 여겼지만.

 

5장의 가장 큰 역할은 5.18의 희생자가 모두 광주전남권 사람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선주도 정미도 어쩌다보니 그 시기에 광주에 있었을 뿐이었다.

즉 ‘당신도 억울하게 죽을 수 있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5장의 마지막, “죽지 마. / 죽지 말아요.”는 1장의 흰 무명천에 이어 또 다시 <흰>을 떠올린다.

어떤 이는 <흰>으로 한강 작품을 입문하기 좋다고 했지만 -그래서 그것부터 읽었지만- 아니다, 틀렸다.

<흰>은 한강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마지막으로 읽어야 했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는 두 번은 읽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을 5장을 읽으며 했다.

처음 읽을 땐 퍼즐을 맞춰나가는 느낌으로, 두번째 읽을 땐 인물들의 숨은 행간을 읽는 느낌으로 읽어야하지 않을까…

 

 

6장 꽃 핀 쪽으로

5장을 읽은 다음 날 회사에서 읽었다. 아니 읽으려고 했다.

6장을 펼치고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알았다. 이건 동호의 어머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다.

세 페이지를 읽고 나니 눈 앞이 흐려지는 거 같아 차마 더 읽을 수 없었다.

이건 회사에서 읽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결론짓고 책을 덮었다.

 

마침 그 날 퇴근 후 집에는 나와 반려고양이만 있었다. 혼자 있을 때 읽어야겠다 싶어 다른 가족이 오기 전 얼른 책을 폈다.

 

아니제.
그럴 수 없는 것을 내가 알제.
내 손으로 너를 묻었은게.

 

슬픔이 밀려오는 것이 느껴지지만 애써 이성의 둑으로 막았다. 하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뚫렸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183페이지 동호의 큰형과 작은형이 싸우는 걸 어머니가 목격한 부분에서.

그때부터 흘러내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이.

 

나는 자녀도 없는데 왜 이렇게 어머니 입장이 이해될까. 그저 밝은 척 하는 것이었을 큰형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가지 않아 동생이 죽었다 마음에 부채를 안고 있었을 작은형은 또 어떤 마음이었을까.

 

엄마들, 여기서 왜 이러고 있소? 엄마들이 무슨 죄를 지었소?
맞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가.

 

살인자가 광주를 왔을 때부터 싸우는 이야기가 나왔을 땐 잠시 눈물이 멈췄다.

왠지 나도 같이 싸우는 느낌이었다.

 

동호가 아기일 이야기를 이어 읽는데 다시 눈물이 났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고양이가 놀랄까 코도 훌쩍이지도 못해는데 - 내 반려묘는 내가 울면 무서워하는 한편 나를 걱정한다.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결국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여기서 참지 못하고 대성통곡해버렸다.

내 옆에 있던 냥이가 놀라서 달아났는데 어쩔 수 없었다.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책을 끌어안고 십여 분을 엉엉 울었다.

아니 엉엉도 아니었다. 거의 고통을 토하는 절규였다.

 

아아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야했나.

 

이 다음 문장을 읽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단 두 문단 남은 그 분량을 읽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한참이 지나 고개를 드니 고양이가 슬금슬금 다가왔고 특유의 동그란 눈으로 나를 걱정하듯 바라보았다.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에필로그는 한강 작가가 어떻게 이 소설을 쓰게 됐고 어떻게 썼는지를 담담히 풀어낸다.

두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한강 작가는 그래서 소년이 오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모독하지 못하도록.

희생자가 되기 원치 않았지만 희생자가 소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