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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다독 2025

45. 모든 삶은 흐른다 - 로랑스 드빌레르

by 김연큰 2025. 2. 12.

2025년에 읽은 두 번째 책으로 1월에 읽었다.
철학 에세이 읽을만한 거 없나 찾다 발견했고 평을 보니 호불호가 나뉘는 듯 하여 중고 서적을 구했다.
 
한국어판 서문을 볼 때만 해도 좀 갸웃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호감 쪽으로 평하고 있다.
뻔한 소리를 길게 늘어놨다는 평도 보았지만, 달리 말하면 누구나 머리 속에선 알고 있는 걸 이처럼 무언가(이 책의 경우는 바다)에 비유해서 글로 쓰는 것도 이 작가의 재주 아닌가 싶다. 또한 다 아는 내용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바다의 속성에 비유했기에 머리에 다시 새길 수 있는 효과도 무시 못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지식을 배울 때 노래 가사로 변환하거나 시각적 효과(그림, 사진, 도표 등)를 추가하면 더 머리에 잘 들어오는 것처럼.
 
나만 해도 커리어상 시니어 레벨이다보니 주니어들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받고 있고 언젠가 이런 걸 정리해서 써보고 싶지만 생각해보면 다른 자기계발서에도 있는 뻔한 말들이다. 내 생각을 어떤 하나의 존재에 빗댄다면 얼마나 풀어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 아직 내 실력이 그 정도가 아니다. 이런 글솜씨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송형석 정신과의사가 쓴 추천의 말이 이 책에 대해 가장 잘 요약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삶은 흐른다》는 바다에 대한 모든 이야기, 이미지, 그리고 저자의 작은 철학적 사고들을 모은 책이다. 체계적이라기보다는 자유롭게 연상하듯 바다와 관련된 단어를 탐색하고 사고한다.

 
(일의 격 - 신수정의 경우 익히 아는 메시지가 많아 실망이라고 했다. 이 책도 이미 머리로 아는 내용이 많은 것은 마찬가지이나 바다의 각종 특징과 속성에 비유해서 썼기에 호감 쪽으로 평하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세 장으로 나뉜다.

  1. vague 파도 - 곡예와 같은 삶을 지나다
  2. marée haute 밀물 - 저 멀리 삶이 밀려오다
  3. marée basse 썰물 - 삶으로부터 잠시 물러나다

그리고 각 장에 에세이들이 모여 있는 식의 구성이다. 아래에는 내 생각을 첨언할 문구를 인용해봤다.
 
 

vague 파도 - 곡예와 같은 삶을 지나다

p31 / 바다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나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p61 / 아름다움을 쫓아다니지만 말고 아름다움을 통해 예상치 못한 감동을 느낄 수 있게 감각을 갈고닦아야 한다.

내가 어느 순간부터 명심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다니다가 문득 깨달았는데, 남들이 좋다는 곳, 랜드마크 등을 좇을 게 아니라 여행에서 발견한 것에 감동을 느낄 수 있는가? 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p88 / 무책임과 무관심이 악한 것을 더 쉽게 퍼져 나가도록 돕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그들은 세니까, 그저 고개를 숙이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체념은 나쁜 행동에 동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흔히 말하는 중립기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중립기어란 결국 저자가 말하는 체념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marée haute 밀물 - 저 멀리 삶이 밀려오다

p103 / 나답게 사는 것은 어렵지만 뿌듯한 일이다.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 것, 우리가 배워야 하는 태도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 “당신이 무기력한 이유는 ‘남이 바라는 나’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그 책이 생각났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무기력이란 무엇일까? 내 상태는 무기력이 맞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던 어느 날, 이런 문구를 보았다.번아웃은 가용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 무기력은 잔여 에너지가 있지만 사용 방향 컨트롤

kim-lotus-root.tistory.com

 
140페이지부터 나오는 “바닷가” 내용이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다.
쉼에 대한 이야기인데 내가 좋아하는 브라이튼이 신경쇠약증 환자를 위한 최초의 해변이었다니!
 

p143 / 바캉스를 제대로 즐기려면 철저히 혼자여야 한다. 주변을 비우고, 요청, 부탁, 질문에서도 벗어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또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24년 7월에 여름 휴가 차 혼자 제주에 갔었는데 나는 제대로 바캉스를 즐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에 제대로 집중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고,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을 가고, 읽고 싶었던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저녁엔 야구를 보고(ㅋㅋ).
 
 

marée basse 썰물 - 삶으로부터 잠시 물러나다

p172 / “소용없어. 난 안쓰러져.”

이 책을 읽으며 이 문장을 나 스스로에게 계속 읊었다. 소용없어. 난 안쓰러져. 아무리 거친 파도가 와도 쓰러지지 않을 거야.
 

p193 / 평온한 마음은 나약함이 아닌 자신감의 다른 이름이다. 자신감이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얻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나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다. 마찬가지로 나를 괴롭히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래서 강한 바람에 힘쓸리지 않도록 최후의 수단인 커다란 닻이 필요하다.

요 몇 년 누군가를 보며 느낀 내용이기도 하다. 지나친 인정 욕구는 스스로를 파괴할 뿐더러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준다. 나의 갈 길을 뚜렷이 정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 애쓰지 말자. 다만 나 자신을 믿되 내가 가는 길을 지켜봐줄 조언자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닻이려나.
 

p201 / 그리스어에서 ‘자유'는 '개성'을 뜻한다. 개성은 분류되는 것에 저항한다. 나 자신에게 정기적으로 이런 질문을 해보자.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남들과 다른 존재로 살아간다. 그러니 남들의 기대에 맞춰 살 필요가 없다.
p209 / 인생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억울하거나 희망을 잃거나 수치심을 느낄 때다. 이럴 때 꼭 해야 하는 것이 있다. 계속 나답게 사는 것. 아무리 인생이 괴롭고 답답해도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남아 있다. 모든 것을 잃거나 거의 모든 것을 잃어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이다.

23년 후반부터 24년 전반까지의 약 1년의 시간은 나에게 암흑기였다. 내 의지대로 무언가를 해보지 못했다. 자꾸 막히니까 타인에게 맞춰보려고도 했지만 오히려 무엇이든 잘 되지 않았다. 남들이 욕을 하건 말건 나답게 해야 내 할 일이라도 제대로 한다는 걸 배웠던 1년이었다.
 

p222 / 고삐 풀린 분노는 폭풍우처럼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일이다. 폭풍우가 지나가면 배는 망가지고 돛은 찢어져 있다. 배를 고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분노에 휩싸이면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상황을 과장한다. 분노한 사람은 상황을 왜곡해서 바라본다. 분노가 가라앉아야 상황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분노까지는 아니지만 23-24년 직딩 인생 처음 겪는 일을 겪으며 나는 패닉 상태였다. 지금 돌아보면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상황을 왜곡해서 바라본다” 딱 이런 상황이었다.
 

p234 /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정보와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줄만 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구축한 정보와 지식을 인용할 줄만 아는 팔로워 순응주의자일 뿐이다. 더구나 이들이 참고하는 정보와 지식의 대부분은 거짓 선동이 난무하는 SNS와 가짜 뉴스에서 온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의 일부인데 제목이 <세이렌>이다. 생각해보면 세이렌이야말로 가짜 뉴스의 원조 아닌가 싶다. 세이렌의 노래에 휘말리면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닫으니.
 


 
'안읽으면 마음에 손해볼 책'(윤대현 교수 추천에서 인용)까지는 아니지만, '낯선 인생이라는 항해를 떠나는 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책'(장재형 대표 추천에서 인용)은 맞다고 본다.
그리고 이미 항해 중인 입장에서의 의견을 더하자면, '이미 항해 중인 이에게는 지난 경로를 돌아보게 하고 그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항해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책' 정도로 평하겠다. 특히 3장 "썰물" 부분이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내돈내산이자 내가 쓴 독후감/서평 45편 :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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