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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다독 2024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by 김연큰 2025. 2. 25.

이 책은 2024년에 읽은 마지막 책이 되었다. 그리고 이미 올린 글이지만, 2025년을 여는 첫 독서는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이 되어서 마이클 샌델의 책을 연달아 읽었다.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

2025년 1월에 읽은, 새해 첫 책이다. 이상하게 2025년을 여는 첫 독서는 이걸로 하고 싶었다.(나중에 언급하겠지만, 2024년의 마지막 독서는 마이클 샌델의 였다.) 능력주의란 결국 잘된 것도 내 덕,

kim-lotus-root.tistory.com

 

이 책은 샌델의 정치철학 명강의를 모은 것이라는데, 그걸 모르고 읽어도 강의 같다는 느낌이 든다. 본인 주장이나 가치관은 드러내지 않은 채 시작하면서 각 철학이 말하는 도덕 및 정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그를 통해 정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립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도록 만들어, 자신이 무엇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도록 유도한다.

 

샌델은 크게 다섯 가지의 정치 철학을 소개하는데 대략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2장 공리주의: 사회 전체의 복지를 극대화하는 방법 찾기. 다만 집단적 행복의 도구가 될 우려.
  • 3장 자유지상주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의 자유를 존중. 다만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식인, 노예 매매)도 인정할 위험.
  • 5장 칸트(도덕법): 모든 인간은 이성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능력이 있으며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변형된 자유지상주의. 의무 동기 판단의 애매함이 맹점.
  • 6장 존 롤스(정의의 원칙): 기본 자유는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사회적 경제적 배분은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에 한해 허용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 8장 아리스토텔레스(목적론): 추구하는 목적 혹은 목표(텔로스 telos)가 본래의 것이 맞는가?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찰하는 것.

 

 

2장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유명한 공리주의로 시작하며, 언뜻 좋아보이는 이 철학의 맹점을 파고드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사실 모든 철학이 깊이 생각해보기 전에는 '어 괜찮은데?' 하고 혹하게 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3장에서 자유지상주의가 등장한다. 자유는 사실 내 입장에선 알러지 같은 철학이다. 자유 자체가 싫단 게 아니고… 왜곡된 자유가 싫다.

그리고 때로는 자유를 규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외설물 규제가 대표적이다.

아무튼 안락사와 장기이식의 이야기를 보며 '대체로는' 내가 자유지상주의에 동의하지 않음을 알게 됐다.

 

4장에서는 개인적으로 충격받은 지점이 있다. 나는 대리 시장을 싫어하고, 기왕이면 없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모병제는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모병제도 결국 대리 시장의 일부라는 걸 이 책을 읽고서야 깨달았다.

 

p147 / 문명화된 사회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5장은 칸트가 말하는 도덕과 정의인데 하.. 저자 말대로 어렵다. 그래서 페이지도 가장 많은 건가 싶고.

지금까지 본 이론(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에 비하면 내가 생각하는 정의에 가깝긴 하다. 역시 이견은 좀 있다. 책에도 나오지만 의무 동기의 기준이 애매한 부분이 있다. 자살을 보는 관점에도 이견이 있다. 나는 자살이 자신을 수단화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삶 자체가 고통인데 너무 그 삶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면 자살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p172 옳은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옮기 때문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이면에 숨은 다른 동기 때문에 하는 것은 도덕적 가치가 없다. (…)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기는 '의무 동기'인데, 칸트에 따르면 이는 옳은 이유로 옳은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가 유용하다거나 편리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

 

6장 존 롤스는 기본적으로 로크 버전에서 개선된 사회계약론 주의.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가상적 합의로 가정한다. 기본 자유가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선 내 생각과 동일하고, 임의적 요소(부모의 재력. 타고난 재능 등)가 개개인마다 미치는 영향이 크고 그로 인해 얻은 혜택은 불공정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매우 동의하는 바다. 그런데 얻은 혜택을 재조정하자는 건 이론적으론 동의하나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어떻게" 할 것이냐가 중요한 화두로 보인다. 이 방법이 적절하다면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롤스에 가장 가깝다.

p226 실생활에서는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따라서 협상력과 지식에서 늘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럴 경우 합의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공정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 계약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도덕성이 보장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231 출생이라는 우연을 기준으로 소득, 재산, 기회, 권력을 배분한다는 점에서 불공평하다고 보았다. 귀족으로 태어난 사람은 농노로 태어난 사람이 누릴 수 없는 권리와 권력을 갖지만 타고난 환경은 그가 노력한 결과가 아니다. 따라서 삶의 전망이 이런 임의적 요소에 달려 있다면 정의롭지 않다.
p238 롤스는 노력도 혜택받은 양육 환경의 결과일 수 있다고 대답한다. “노력하고, 도전하고, 소위 높은 자격을 누릴 만한 사람이 되려는 의지조차 행복한 가정과 사회적 환경에 좌우된다."
p243 내 기술이 우대받느냐. 그렇지 않느나는 지금의 사회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달렸다. 어떤 자질이 사회 에기여하느냐의 평가는 그때그때 사회가 어떤 자질에 많은 포상을 하느냐에 달렸다.
p244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에서 이런 우연이 차지하는 부분을 흔히 간과한다.

 

 

7장은 칸트와 롤스의 철학까지 결부시켜 소수 집단 우대 정책에 대한 논의를 펼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다문화가정, 장애인, 농어촌특별전형이 해당될텐데 나는 '대학이 스스로 정한 사명에 따라 입학 기준을 정했고 그 사명이 내가 납득할 수 있다면 동의'하는 입장이다. 결국 내 정의와 그 사명이 맞느냐인데 텍사스 법학대학원의 경우는 맞는다. 캘리포니아에서 인종별 우대 정책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 것도 납득됐다. 여기는 다문화 다인종이 이미 일반적이고 그다지 차별 요인도 없으며 유색인종이 오히려 큰 영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8장의 주인공은 목적론을 가진 아리스토텔레스. 정의는 중립적이지 않으며 그에게 정의란 자격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플루트를 배분할 때 최고의 플루트는 최고의 연주자가 가져야 한다. 플루트의 "목적"은 뛰어난 음악을 만드는 것이고 따라서 이 목적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최고의 플루트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은 내가 생각하는 정의에도 가깝지만 노예제가 정당한지에 대한 판단 과정을 보면 이 정의도 맹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p288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는 그보다 차원 높은 의미로서, 어떻게 하면 좋은 삶을 살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p295 중요한 것은 "알맞은 사람에게, 알맞은 정도로, 알맞은 때, 알맞은 동기를 가지고, 알맞은 방법으로"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 도덕적 미덕에는 판단,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천적 지혜라고 칭한 지식이 필요하다. (…)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들에게, 그리고 인류 모두에게 무엇이 이로운지 심사숙고할 줄 안다.

 

9장. 국가가 한 과거의 잘못을 현재 사과해야 하는가? 나는 사과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건 앞서 롤스가 말한 임의적 요소와 연관있다. 과거의 착취로 현재의 그 나라의 위치가 있고, 착취 대상 국가는 그 아픔과 후유증을 여전히 갖고 있으니 사과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인간을 서사적 존재로 보는 건가 싶기도 하고.

p321부터 나오는 인간의 자유의 의미 - 권리가 선보다 앞서느냐 이 부분이 참 어렵다. 나는 가슴으로는 권리가 앞서는 것에 찬성이지만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만연해진 물질만능주의 현대 사회에서는 그게 맞을까? 라는 의문이 있다. 즉 현재는 선을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것.

p328 (매킨타이어 발언) 나는 내 가족, 내 도시, 내 친족, 내 나라의 과거로부터 다양한 빚, 유산, 정당한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는다. 이런 것들이 내 삶의 기정사실을 구성하며 내 도덕의 출발점이다.

 

10장(마지막)에서야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9장에서 이미 느끼긴 했지만 정의란 공동선을 고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66페이지에 나온 내용을 약간 비틀어 말하면 다음과 같이 묻는 책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는 참으로 정의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여기, 정의에 대한 여러 철학들이 있고 내용은 이러합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란 과연 무엇입니까?

 

따라서 혼자 읽기보다 누군가와 같이 읽고 토론하며 읽기 좋은 책이다. 그래야 보다 생각을 깊게 하고 본인의 의사를 제대로 검토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목적론에 가장 가깝다고 느끼지만 9장 및 10장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본래의 내가 그렇게 정의를 생각한 걸까? 아니면 이 책을 읽으며 서서히 그렇게 변해간 걸까? 왜냐면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는 정의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은 없으니까.

여러모로 헷깔리게 하는 책이다. 그게 이 책 매력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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