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에 읽은 다섯 번째 책.
개인적으로 어휘력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학생 시절 영단어 외우듯이 공부하고 싶지는 않고 뭔가 재밌는 책 없을까 고민하던 와중! 이 책을 발견하고 24년 12월에 구매했다.
마이클 샌델의 책을 먼저 읽겠다는 욕심에 순번은 뒤로 조금 밀려서 구매하고서 한 달 후에야 읽었는데, 소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것이 바로 국문과 교수님의 필력인가!
근래 읽은 인문책 중 가장 좋다.
재밌고 흡입력 있고 술술 잘 읽히고 뜻밖의 깨달음도 있고 놀라운 부분도 있다.
처음 읽은 날 잠깐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전체의 1/3 읽었다는 걸 깨닫고 저자의 필력을 실감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상추 부분(05 선비의 밥상에서 삼겹살집 쌈바구니까지)은 너무 웃겨서 ㅋㅋㅋ 진짜 입을 헤- 벌리고 읽고 있었다 ㅋㅋㅋ 내 스스로가 바보 같다 생각 들 정도로.
또한 개인적으로 고양이는 원래 아깽이를 뜻하는 거고 성묘는 괴라는 것이 집사로서 엄청난 깨달음이었다.
약간 (2024년 10월에 읽은) <일생에 한번은 헌법을 읽어라>(이효원 저)랑 비슷한 결인데 가르치는 분들 특징인가 싶기도.
일생에 한번은 헌법을 읽어라 - 이효원
2024년 10월에 읽은 책인데.. 그로부터 두 달 후 우리나라를 흔든 엄청난 사건- 계엄령 사건 직후 다시 읽기도 했다.헌법 하나당 2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끊어읽기 좋아 짧은 시간에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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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소리냐면 지식을 전파하는데 뭔가 부드럽게 강의 듣는 느낌으로 서술하고, 저자 본인의 생각을 덧붙이는데 그게 지식과 자연스레 연결되어서 아~ 하고 절로 스며들게 하는 매력이라고나 할까.
다만 이효원 교수님은 헌법에 대한 해설을 하고 거기에 본인 생각을 덧붙였다면, 이 책 저자는 단어에 대한 어원이나 지금은 잊혀진 의미 혹은 잊혀진 단어 등을 풀어나가면서 본인 생각을 자연스레 연결한다.
그리고 담백하게 풀어나가는 헌법 해설과 달리 이 책은 단어 설명이나 그 단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할 때 눈에 착착 감기는 또 가끔은 톡톡 튀는 재밌는 표현으로 미소짓게 한다. 뭐랄까 말재주 좋은 할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 듣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자신의 지식을 고집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넓은 포용력까지 있어서 굉장히 편하게 다가온다.
p107 / 제가 생각하는 국어학자 역할은 이렇습니다. 앞장서서 "이쪽으로 오시오" 하고 사람들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뒤쫓아 가면서 확인하는 거죠. 다만 그 방향이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이건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선택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제 생각이 틀렸고 사람들의 방향이 맞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 책은 피식피식 웃으며 재밌게 읽다가 한편 멈추고 곰곰 생각하게 하는 면이 있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예를 들면 subscription과 구독의 관계(이건 나도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던 바다). 외래어를 우리 말로 무조건 바꿔야 하는가. 인권감수성이 반영되지 않은 옛 용어를 유지해야 하는가. 한글 이름이란 무엇인가 등등..
p152 / 이 단어가 왜 이렇게 불리게 되었는지, 왜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리기도 하고, 전혀 다른 것을 두고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지를 추적하다 보면 생동하는 삶을 만나게 됩니다. 단어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단어를 알아가는 과정은 사람들의 삶을 아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자 이야기도 재밌다. 참죽나무 춘椿 사례는 좀 놀랍고, 바다로 쓰는 우리나라와 외국에서 들어온 걸 뜻하는 중국의 海 같이 한중일이 다르게 쓰는 경우도 그렇고 순우리말 지명이 한자로 변경된 경우도 흥미롭다(노들=노량, 애오개=아현, 한티=대치, 새절=신사, 벌말=평촌).
이 부분에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는데 예전엔 순우리말이 촌스럽다 했다는 것. 지금 보면 벌말보다 평촌이 더 촌스러워 보이니 시대마다 정말 달라보인다. 언어는 역시 살아있는 생물인가.
주의환기도 잊지 않는다.
p205 / 대개 사람들은 사전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으니까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전도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뜻풀이가 잘못되어 있는 것도 많지요. 사전 기술하는 사람이 모든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이지는 않으므로 정확한 지식이 없다면 비슷한 다른 풀이를 할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전에서 기술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항상 옳지는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전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종의 권위에 대한 복종을 경계하는 느낌? 사전 맹신하지 말라는 말은 마지막 장인 23장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p291 / 우리는 사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되 사전에서 기술하고 있다고 하여 모든 말이 다 옳다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상하다 여겨지면 비판을 할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하지요. 사람은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소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앞부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추가로 몇 가지 꼽자면 - 전부터 갈매기살의 명칭 유래가 궁금했는데 그걸 알게 됐고 김치가 '디히'라는 말에서 변하고 변해서 온 것이라는 것도 새롭다. '과도 교정'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충격적인 것도 있다. '케첩'이 중국에서 유래된 거고 원래는 토마토 소스가 아니었다니...???
비단 어휘를 많이, 다양하게 아는 것 뿐만이 아닌 - 단어 하나에 깃든 세계를 이해하면 쓰임새를 다시금 곱씹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 책이었다. 더 많은 세계를 알 수 있도록 후속작도 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p230 / 경험의 폭이 넓을수록 이해할 수 있는 세계 또한 넓어집니다. 단어의 세계를 아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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