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명한 소설이야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원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성향상 그다지 읽을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데미안이 인생책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몇 만나고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했고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칭찬하고 읽은 책이라면 한 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에 읽어보게 됐다.
고전 시리즈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선호하는지라 이 버전으로 구매했다.
책의 대강 줄거리는 책 뒷편에 적혀있고, 그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이미 적혀있다.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우정을 바탕으로, 성장 과정에서 겪는 시련과 그 시련의 극복, 깨달음을 통해 완전한 자아에 이르는 과정을 성찰한다.
이어 챕터로 구성되었는지 살펴봤다. 책 읽을 시간이 없을 때는 자기 전 한 챕터라도 읽는 것을 개인적인 목표로 삼았기에.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별 페이지 수를 보니 자기 전에 읽기 적당해보이고 오래 걸려도 8일이면 다 읽겠구나 했는데 이틀 만에 다 읽었다 ㅎㅎㅎ
이어 작품 해설을 읽었다. 번역서인 경우는 작품 해설을 읽으면 대충 이 번역의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어 먼저 읽어보는 편이다. 물론 작품 해설에는 양면성이 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 데미안의 경우 작품 해설 제목부터가 스포다. '나를 찾아가는 길'. 그치만 어차피 내용 전반을 아는 건 소설에서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힘과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기대되게 만드느냐가 중요한 거고,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이미 어느 정도 스포는 된 셈이라고 생각하기에.
번역의 의도는 p229부터 나온다. 지나친 윤문을 피하고 원문에 가깝게 번역. 예를 들어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장한다."는 그 유명한 문장도 그런 의도로 원어에 가까운 번역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체 줄거리는 책 뒷표지에 이미 모두 나와있어서 생략해도 될 거 같고 내가 인상깊게 본 구절과 감상 위주로 적는다. (그래도 길다.)
두 세계
좀 불편하고 답답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두 세계가 존재함을 나도 익히 알기에 그런 것일 수 있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느낌인 것일 게다.
아무튼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불편한 건 불편한 것이다. '이래서 나는 소설이 별로야. 왜 이렇게 문장을 덧붙이고 덧붙이고 덧붙여 이 불편한 내용을 길게 만드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한편, '그래 그게 작가의 의도겠지'라고 생각이 드는.
아마도 이렇게 독자를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싱클레어와 최대한 비슷한 심정을 느끼게 해야 그 다음 데미안을 만났을 때 더 희열감이 느껴지겠지.
카인
드디어 데미안이 등장한다. 읽다보니 데미안이 카인인가 생각이 든다. 이 장 제목도 그렇고,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이 데미안을 대하는 태도가 약간 그런 느낌이다. 싱클레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튼 답답하던 싱클레어의 상황은 이 장을 통해 해소된다.
데미안은 꽤 좋은 말, 옳은 말을 많이 한다.
"우리가 배우는 것들은 대부분 분명히 진실이고 올바른 것이지만, 그것들 모두를 선생님들이 보는 것과는 다르게 볼 수도 있어."
"언제나 사실대로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언제나 사실대로 설명되지도 않지."
"언제나 물어야 해, 언제나 의심해야 하고."
요약하면 '비판적 사고'다.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필요한 역량.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구분해야 하고 AI가 주는 정보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요즘 시대에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는 말들 아닌가 싶었다.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데미안은 이제 보다 본격적으로 그의 메시지를 전파하는데, 특히 이분법적 세계관에 반대한다. 책에 써있는 말로는 신과 악마의 이분법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비유하는 바를 생각해보면 이 소설의 시작이었던 '두 세계' 그러니까 0 아니면 1, 우리편 아니면 적, 선 혹은 악, 빛 혹은 어둠 - 이렇게 나눈 행위 자체와 그 나눈 결과 중 한쪽 편만 드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라는 문장(p83)을 곱씹을수록 그렇게 느꼈다.
'금지되었다'라는 것은 그러니까 영원하지 않아, 바뀔 수 있는 거야.
우리 누구나 자기 스스로 찾아내야 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 자기에게 금지되어 있는지. 금지된 것은 결코 할 수 없어.
지나치게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다른 곳에서는 폄하되는 다른 일들은 허용돼 있어. 그러니 누구나 자기 자신 편에 서야 해.
결국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흔한 말이고 누구나 듣는 말이고 누구나 생각하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감탄했다. 나 자신의 기준을 마련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이렇게 전개할 수 있구나 하면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제목 그대로이다. 싱클레어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살고자' 투쟁한다.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그것으로 인도한 것이다.
싱클레어의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살아보지 못하고 다시 불안한 상태가 되었을 때, 어쩌면 매우 뜬금없이 오르간 연주가 피스토리우스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위 내용은 그 이야기를 연결시키기 위한 문장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또한 작가의 재주이리라. 62.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 루이스 세풀베다에서도 바다 고양이 바를로벤또가 딱 그런 존재 아니었던가.
나는 우연이 사람의 인생을 많이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헤세는 자의식이 불러낸 사건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는 말을 헤세는 아마 '필연이 우연을 부른 것'이라고 말할 듯. 근데 그러면 잘못된 길로 간 사람(예: 범죄자)은 그의 욕구와 필요가 그런 것이었다고 믿는 건가. 아니면 내가 헤세의 메시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가...
야곱의 싸움
특이한 음악가 피스토리우스가 싱클레어에게 가르친 내용 중 가장 눈이 간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돼,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어 놓았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돼.
자기의 자아를, 나 자신을 인정하라는 뜻인 거 같은데 세상이 이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 다 남과 비교하게 되지.
또한 싱클레어의 "생각나는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잖아요"라는 질문에 답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머리에 스친 모든 생각을 그냥 행동으로 옮기라는 게 아닐세. 다만 좋은 뜻을 가진 착상들을 몰아내고 그걸 이리저리 도덕화해서 해롭게 만들지 말라는 걸세.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바로 우리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그러고보면 악마도 인정해야 한다는 데미안의 말은 결국 피스토리우스의 저 답변과 맞물리는 것 같다. 나의 죄 많은 생각도 나의 일부이니 인정하라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이 자기 자신을 해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
싱클레어는 자신의 스승이자 친구인 피스토리우스와 힘겨운 이별을 한다. "마음속의 이끌어 가는 물결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멀어져가려 함을 갑자기 알아차렸을 때"가 와 버렸고, "누구든 한 번은 자신을 아버지로부터, 스승들로부터 갈라놓는 걸음을 떼"는 과정을 거친다.
난 사실 이 부분이 야곱의 싸움이라기보다는(물론 내가 성경을 잘 모르는 탓도 있을 것이다) 알에서 나오려는 투쟁 과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하고, 그 세계 중 일부가 아버지와 스승 아닐지.
책 뒷표지에 있던 내용 그대로 완전한 자아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래선지 소설의 탈을 쓴 철학책을 한 권 읽은 기분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그리고 실천하고 싶은 메시지를 또 듣고 있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다만 4장 베아트리체는 약간 다리 같은 느낌이라 별 감흥이 없었고
7장 에바 부인과 8장 종말의 시작은 결론을 내기 위한 장이어서 그런지... 난해하기만 하고 재미는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데미안이 주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는 2장 카인과 3장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피스토리우스가 주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는 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와 6장 야곱의 싸움
이 네 장이 나에게 가장 흥미롭고 좋았던 부분이다. 다시 읽으면 이쪽만 읽을지도 모르겠다.
내돈내산이자 내가 쓴 독후감/서평/책 리뷰 81편 : 데미안 (헤르만 헤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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