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처음 읽은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록상 2022년 7월에 2회독을 했고 이번 달에 다시 읽게 됐다. 3년만에 이 책을 다시 읽은 이유는 지난주 유독 글이 써지지 않아서였다. 7월에는 독서를 하지 못했고 8월부터 다시 책을 읽고 있는데 글을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는 걸 요즘 체감한다.
나는 테크니컬 라이터(Technical Writer)로 일한 적이 있다. 그 직군으로 일할 때 신입이나 주니어에게 이 책을 자주 추천했었다. "정치적인 내용은 고려하지 말고 기법 및 직업의식에 치중해서 읽어보라"고 강조하면서. 내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붙였었다. 그런 리스크를 안고도 추천했던 이유는 시중에 많은 기술적 글쓰기 책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만큼 도움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술적 글쓰기 책들은 대부분 테크니컬 라이터를 타겟으로 한다기보다는 개발자를 타겟으로 해서 기법만으로 보면 도움이 되었지만 직군의 마인드셋에 도움되는 글은 없었다. 반면 대통령 연설비서관은 대통령의 말과 생각을 그러니까 타인의 말과 생각을 글로 옮겨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에서 비슷했다.
이 책은 완독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역시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글이 술술 읽히게 쓰는 재주가 있는지라(정말 부러운 부분이다ㅠ) 금방 다 읽었다. 다시 읽어보니 전반적인 감상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3년의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한 바가 있다보니 추가된 감상도 있다.
참고1: 내가 읽은 책은 2016년에 나온 초판 136쇄로, 현재 팔고 있는 개정판과는 페이지와 내용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참고2: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읽는 게 좋지만 특히 다른 이의 생각을 글로 적는 업무를 하느냐 혹은 자기 고유의 글을 쓰느냐에 따라 보다 집중해서 읽을 대목이 달라진다.
목차를 봤을 땐 여타 글쓰기 책과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구조 만들기, 첫머리 시작하기, 퇴고의 중요성, 쉽게 쓸 것 등등... 근데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한 사례가 무려 대통령 연설비서관, 즉 스피치 라이터로서의 경험이니 그 스케일이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잠시 내 이야기로 끼어들기를 하자면 난 마무리보다 시작이 쉽다고 느낀다. 첫 문장을 완성하면 그 뒤는 일필휘지가 되는 타입이다. 즉 글이 안써지는 날은 대개 첫 문장이 안써지는 날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런 점에서 처음이 어렵다는 건 맞는 말인 거 같다. 아무튼 처음은 조건이 충족되면 써지는데 마무리는 뭘 해도 어렵다. ㅠㅠ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와, 이 책을 다 읽어갈 무렵 느낀 건 테크니컬 라이터는 스피치 라이터에 비해 엄청 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테크니컬 라이터의 독자는 대상 제품 혹은 플랫폼을 연동하려는 개발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기획자나 개발자의 기획/개발 의도를 파악하고 이를 독자가 잘 이해하고 연동할 수 있게 글을 쓴다. 즉 목적과 목표가 단순하고 뚜렷하다. 반면 스피치라이터는 사회정치국제문화 등등 다방면의 생각, 철학, 비전, 정책을 아우르는 대통령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해야 하고 독자는 전국민을 너머 전세계인일 수도 있다. 각기 이해관계가 다 다른 독자에게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니 (특히 p32 이라크 파병 및 p70 김선일씨 피랍 사건 사례 참고)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한다. 오죽하면 p27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연설문을 쓰는 건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상황에서 과녁에 화살을 맞히는 것과 같다.' 고 했겠는가. 이런 걸 내가 쓰라면 쓸 수 있을까. 난 못할 거 같다.
여러 대통령의 사례도 함께 다루기에 (특히 p164 <이야기 다섯> 부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신 분이지만 지지 정당에 상관없이 볼만한 책이다. 정확히는 2/3 지점까지는 그렇다. <이야기 여섯> 이후(p209) 부분은 김대중 및 노무현 정치 노선을 좋아하지 않는 이는 읽기 불편할 수 있다. 그래도 기법을 배운다 생각으로 속독이라도 해보면 좋을 거 같다. 특히 <이야기 열>(p317)은 자신의 가치관에 상관없이 꼭 읽었으면 한다. 반대로 김대중 및 노무현 등 민주진영 지지자라면 다른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불편할 수 있겠으나 본인의 호오와 관계없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스피치에 대한 자세는 읽어볼 만하다. (p44, p166에 사례가 있다.)
마지막으로 테크니컬 라이터나 스피치 라이터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을 글로 적어야 하는 경우 꼭 봤으면 하는 내용이 있다. <고스트라이터(p202~208)> 부분으로, 테크니컬 라이터의 예를 들자면 그 직군 또한 개발자/기획자의 '입'이 되어야지 테크니컬라이터 본인의 글을 쓰면 안된다. 편집자의 재량으로 독자를 위한 몇 가지 자료를 추가할 수는 있겠으나 그건 온전히 '독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p207 '단순 연설문만 쓰는 사람이 아닌 통로 역할도 해야 한다'는 내용 참고)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문장 몇 가지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p27 /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연설문을 쓰는 건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상황에서 과녁에 화살을 맞히는 것과 같다. 그 시기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맞혀야 하기 때문이다.
p46 / 독서와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따라서 독서 없이 글을 잘 쓸 수 없으며, 글을 잘 쓰는 사람치고 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p173 / 글쓰기는 나와 남을 연결하는 일이다. 그 글을 봐주는 사람이 이해 못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하고 제대로 이해시킬 책임은 쓰는 사람에게 있다.
p203 / 스피치라이터에게는 ‘내’가 없다. 자기를 버려야 한다. 연설하는 사람에게 빠져 살아야 한다.
p244 /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또한 우리는 글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p271 /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글을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자기만의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p311 / 글을 쓰는 일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준다. 생각이 정리되고 공부가 된다. 위로와 평안을 준다. 용기를 얻는다. 무엇보다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스스로 성찰하게 된다.
내돈내산이자 내가 쓴 독후감/서평/책 리뷰 79편 :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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