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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다독 2025

78. 유럽 도시 기행 2 - 유시민

by 김연큰 2025. 9. 11.

이번엔 어떤 책을 읽을까-하고 책장을 보다가 '아니 이 책이 비엔나 부다페스트 프라하를 다뤘잖아?!'하며 집어들었다. 전에는 시큰둥하게 봤던 책인데, 역시나 다녀와본 곳에 더 반응하게 되나보다.

 

아니나다를까, 서문에 그런 말이 있다. 그 도시를 가본 적이 있는 독자가 더 적극적이고 우호적인 평을 남겼다고. 그럴만하다. 나도 아마 동유럽을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을 거 같은데(심지어 책장에 있었는데도 안읽었다.) 다녀온 후 이 책을 들게 된 것 보니 말이다.

 

또한 텍스트를 보지 않는 사람은 콘텍스트의 가치를 알기 어렵다는 말에 공감한다. 아무리 여행 프로그램 등에서 여기 정말 좋다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면 위주로 포장해도 취향에 안맞으면 시큰둥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일게다.

 

(아,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이 책은 내가 산 책이 아니다. 가족이 산 책이다.)

 

빈(비엔나)

 

빈은 지구 행성에서 가장 호화로운 도시라는 그렇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은 도시라는 데 공감한다. 나도 정확히 그런 느낌이었다. 화려하고 아름답고 볼 거 많은데 이상하게 차가운 느낌이 드는 도시.

 

두 번이나 가본 도시지만 이 책 덕에 몰랐던 문화/역사적 배경을 많이 알게 됐다. 슈테판대성당에 대해서도 보다 깊이 알게 됐고. 빈이 대성벽을 해체하고 도시 개발을 완전히 다시 한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첫방문이야 예술품을 찾아 다닌다는 목적이 뚜렷하여 별 상관 없었지만 두번째 방문 때 이 부분은 알고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을.

 

빈 미술사 박물관(이 책에서는 예술사 박물관이라고 칭함)에 대한 감상은 완벽하게 나와 같았다. '진부하고 지루하다'는 표현이 딱이었다. 빈에 대한 여행 가이드나 심지어 ChatGPT도 빈 여행 일정을 물어보면 빈 미술사 박물관을 언급하지만 나는 굳이 필요없다는 입장이고 그래서 재방문할 때는 넣지 않았다. 제체시온(Secession)이 더 인상적이라는 평에도 공감한다. 내 경우는 클림트 작품의 실물을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간 것이고 여행 전 이미 클림트, 에곤 실레 등의 분리파 거장들에 대해 조사할만큼 조사하고 알만큼 알고 간 것이라 이해도가 높았던 것도 좋았던 이유 중 하나일 게다.

 

모차르트와 시씨에게 열광한다는 점 또한 공감한다. 빈과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로 도배되어 있고 빈에 시씨로 도배된 점도 마찬가지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방문 당시 왜 여기도 시씨를 좋아하는 거지? 생각했는데 이 책 덕에 의문이 풀렸다. 뭐 아무튼 나는 그녀가 '자기다운 삶'을 추구한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게까지 띄워질 인물인가 하는 점에서는 좀 갸웃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나 명성황후나 뭐 이런 사람들처럼 2차 창작하기 좋았던 점이 더 열광하게 만든 것 아닐까? (실제로 뮤지컬 <엘리자벳>이 있으니)

 

쇤브룬이 베르사유 궁전과 닮은 줄은 몰랐다. 아무튼 궁전보다 정원이 더 좋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나도 여행기에 같은 얘기를 했다. 하지만 글로리에테와 넵튠 분수에 대한 생각은 좀 다르다. 사람마다 당연히 느끼는 게 다르니 유시민의 생각도 인정하지만.

 

또한 작가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는데 내가 느끼기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시씨를 더 숭배(?)하는 면이 있긴 한데 첫 방문 시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마리아 테레지아에 대한 향수가 빈 전체적으로 느껴졌다. '이 사람들 제국주의 시절을 너무 그리워하는 거 아냐?' 싶을 정도로. 어쩌면 지금의 시씨에 대한 열광도 제국주의 시절의 영광을 표출하는 대상을 마리아 테레지아에서 시씨로 옮긴 것 아닐까.

 

벨베데레 궁전은 궁전이라기보다는 복합 미술관이라는(p75) 평에도 공감한다. 아마 이것에 대해서는 벨베데레를 가본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까. 영국 런던에 내셔널 갤러리가 있다면 오스트리아 빈에는 벨베데레 궁전이 있다-라고 나는 생각했으니.

 

빈에 대한 이야기는 p92 '빈틈없는 도시'라는 제목으로 마무리한다. 뭔가 완벽해보이는 도시. 그래서 편하지 않은 도시. 상처가 있지만 다른 것으로 가린 도시(나는 빈에서 이 점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싫지는 않고 편하진 않아도 좋고 기회가 생기면 또 가고 싶다는 평에도 공감했다. 나에게도 빈은 그런 도시였다. 막상 재방문했을 때는 첫 방문과 달리 '센트럴 유럽'이라며 유럽의 중심이라고 우기는 모습에 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뭐 자국민의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해 제3자가 볼 때는 말도 안되는 홍보를 하는 걸 한 두 번 본 게 아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에서의 내 인상은 생각보다 소박하고 별 게 없는 곳이라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묘하게 정이 갔다. 숙소도 번화가와 슬럼가 경계에 있는 곳이어서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때 술병을 달고 다니는 사람을 자주 보았지만 무섭거나 딱하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프라하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했다.)

 

초반에는 가봤던 곳(도나우 강, 영웅광장, 노란 M1 지하철, 성 이슈트반 대성당 등) 사진을 대조하며 추억에 젖어 헤실헤실이었다. 부다페스트는 대체로 인상이 좋았고 경험도 좋았다. 담에 또 가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그렇게 좋았기 때문인지 헝가리의 어두운 역사를 접하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특히 123 페이지를 보며 우리나라와 넘 닮아 눈물이 맺혔다. 닮았다는 건 부정적인 면도 포함한다. 우리나라도 우리가 잘못한 건 드러내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베트남 전쟁...

상처 받은 나라일수록 지키기 위해서 보수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지켜야 하니까 오히려 잘못한 것을 숨기려 들고.

 

헝가리의 근현대사는 알면 알수록 참으로 슬프고 우울하고 아프다. 제국주의 때문에, 공산주의 때문에, 나치 때문에 죽고 죽이고 그래서 준 상처도 받은 상처도 많다. 부다페스트가 맘에 들어 다른 여행지 어디 없나 찾을 때 생각보다 그런 곳이 없어 의아했는데 이렇게 다 파괴되어서인가 보다.

 

게다가 헝가리도 우리나라도 돈 버느라 급급할 때 유시민이 말하는 '미학적 문화적 수준'이 떨어지는 상황이 나왔으니... 먹고사니즘이 중요할 땐 어쩔 수 없는가보다. 우리나라에 소위 '멋진' 현대식 건물은 먹고살만할 때 생기지 않았나. 한편 그렇게 되기 전에는 난개발로 몸살이었고.

 

유시민 표현으로 '슬프면서 명랑한' 부다페스트. 이래저래 서울과 비슷한 곳 같다.

 

프라하

 

사람 많은 것에 질색하는 내 입장에서 카를교와 천문시계 근방의 인파에 질렸었는데 유시민이 쓴 내용을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갔던 때가 특별한 게 아니라 원래 거긴 사람 많은 곳이었구나 싶었다.

 

얀 후스 동상은 나도 보았지만(당연하다. 못볼 수가 없는 위치에 있다.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처럼.) 그렇게까지 무시무시한 전쟁의 주인공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마틴 루터 이전에 후스가 선행주자였을 줄이야. 이런 일을 겪었으니 무신론자가 절반인 게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이런 배경을 몰랐다면 유럽치고 이례적이다, 공산주의 영향이었나 뭐 이런 생각하고 말았겠지.

 

프라하 부분에서 흥미있게 본 것은 '보헤미안'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야기와 체코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보헤미안은 나도 현대적 의미-틀에 박힌 규범이나 행동양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한 가치관에 따라 자유분방하게 활동하는 지식인, 예술가를 가리키는 말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원래 의미는 체코인이 아닌 보헤미아 사람을 지칭하는 외국어였다니.

 

음식에 대해서는 읽으면서 너무 웃겼다. 꼴레뇨는 그 자체가 나쁘진 않으나 독일의 학센에 비하면 특별한 매력이 없고 아류에 불과하며 굴라시는 육개장 같은 헝가리가 최고라고 체코 음식을 엄청 깠다. 그런데 맥주 맛있는 건 인정한다. 독일에서 오래 산 분이 체코 맥주 인정하는 거 보니 진짜 체코 맥주가 찐이긴 한가보다. (나도 여행 가기 전에 독일 맥주보다 낫다는 평을 봤지만)

 

블타바강에서 재즈 보트를 타면서 유람선과 야경은 역시 부다페스트가 최고라 한 유시민의 의견에 동의하는 한편 이 책 덕에 어떻게 그 얕은 블타바강에서 유람선이 다녔는지를 이해했다. 블타바강은 길이가 엄청난 강인데 독일 드레스덴으로도 가는 건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암튼 프라하 구간은 '여울'에 불과한데 보와 갑문이 있어서 유람선이 다닐 수 있었던 것이었다.

 

유시민은 프라하에 대해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품고 있으며 지나치지 않으면 뭘 해도 괜찮은 거 같은 곳이라 했다. 나도 프라하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 다만 '지나치지 않음'의 기준이 내가 더 엄격하여 맞지 않았던 곳이었을 뿐. 나는 오늘은 오늘의 즐거움을 추구할 지언정 지난날의 상흔도 잊지 않으려하는 성향이 있고 그래서 가져간다. 오늘의 즐거움과 과거의 상처가 공존하는 거다. 그런 점이 달라서 아마 프라하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드레스덴

 

독일은 가본 적이 없다. 드레스덴도 근현대 미술 덕에 아는 곳이지 잘은 모른다. 진정한 간접체험이다.

 

그런데 드레스덴 자체가 작은 도시라서 그런지 여행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고 내용 중 지분도 많았다. 훗날 독일에 가게 되면 근현대사 좀 공부하고 가야 하지 않으려나 생각이 들었다.

 

드레스덴엔 유독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작가도 다른 사람의 문장을 인용한 것이지만 252 페이지의 '속도는 공간을 말살한다' 라는 문장도 그렇고, p254의 '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길은 그저 거기 있었을 뿐, 모든 악은 사람이 저질렀다.' 라던가, p307에 있는-이것도 인용이긴 하지만- 독일 우스개 "세상에서 제일 얇은 책은 미국 역사책과 독일 요리책이다", 근데 심지어 "영국에 비하면 독일 음식이 한 등급 위"라니 언제까지 셀프디스를 할 것인가ㅋㅋ

 

한편 드레스덴 폭격은 아무리 독일이 전범국이라 해도 연합군이 지나친 공격을 한 것인데 이에 대해 50주년이 되어도 조용히 넘어가는 건 일본과 다른 태도라 새삼 느꼈다. 항상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일본과 달리 독일은 어떻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인가. 심지어 앞서 살펴본 헝가리나 체코도 나치에 협력해놓고 모르는 척 묻어두곤 하는데. 그저 '히틀러가 수장이었던 나라'라는 그것 하나 때문일까. 히틀러가 가장 나쁜 놈인 건 맞지만 그 외의 전범들은 은근슬쩍 연합군 특히 미국의 묵인 하에 꼬리 자르기가 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추가로 느낀 점.

 

1. 유시민은 독일어에 능통하고 그래서 독일어권 국가에 여행을 갔을 때 상대적으로 이해가 편했을 거 같다. 참 부러운 점이다.

2. 세계적으로 전쟁이 없던 때는 없지만 여기 나온 모든 나라가 근현대에 전쟁이 있었고 냉전시대의 영향도 서유럽에 비해 크게 받았다. 동유럽이 세세히 보면 다르지만 언뜻 보면 비슷한 이미지를 풍기는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가족돈가족산이자 내가 쓴 독후감/서평/책 리뷰 78편 : 유럽 도시 기행 2 (유시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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