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세풀베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많이 발표했고, 이 책은 내가 접한 그의 작품 중 처음으로 읽은 정치적 이데올로기 및 그것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다룬 소설이다. 총 열여덟장의 이야기와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로 구성되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풀베다 책 중 가장 내 취향과 거리가 있다.
처음 세 장 정도는 뭔 소린가 싶다가 이후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며 몰입도가 높아졌다.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읽을 수 있는 흡입력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론 글쎄...
첫째. 일단 칠레의 역사적 배경을 모르면 이해하기 좀 어렵다.
책 소개에 "칠레 최초의 민주적 사회주의 정권을 이루어 낸 아옌데 대통령을 무너뜨린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군사 독재와 사회주의 탄압 속에 뿔뿔이 흩어진 혁명가들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이 문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아옌데라는 사람이 그래서 뭐 어쨌는데…?' 이렇게 될 수 있다. (내가 그랬단 얘기다.)
옮긴이가 각주로 배경을 최대한 서술하려 노력했지만 이 소설은 근본적으로 글로벌 타겟으로 보긴 어려웠지 않나 싶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예로 들면 -뭐 우리나라 배경이니까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거 아니냐 하면 할 말 없지만- 5.18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어도 동호라는 인물 자체만 따라가도 몰입이 되었다. 반면 여기 나온 인물들은 칠레의 현대사를 알아야 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꼭 먼저 읽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책 소개를 읽고 이 책을 고른 게 아니라 세풀베다의 작품을 가급적 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책 표지에 있는 글만 읽고 읽어서 이해가 부족했다.
둘째. 이 소설에서 과거의 혁명가들을 과하게 낭만적으로 다룬 부분은 좀 불편했고, 역사적 배경을 알고 읽었어도 공감이 안됐을 듯 하다.
그래선지 이 책을 읽던 도중에 SNS에 '나는 세풀베다의 책은 환경이나 자연을 다룬 게 더 취향이고 와닿는 거 같다'고 썼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마무리-열여덟번째 장은 감동적이었다. 꼭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가, 투쟁가 같은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저 인생을 살아가기 바쁜 각자의 사람들에게도 해주면 좋을 말이 있어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 중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옮겨본다.
p231 / 절대로 기억을 믿지 말게나. 왜냐하면 기억은 늘 우리 편이거든. 어떤 쓰디쓴 경험이나 몸서리 쳐질 만큼 끔찍한 장면이라도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두 아름답고 달콤한 추억으로 둔갑하지. 악몽 같은 어둠의 세월도 기억이 스치는 순간 환한 빛의 세상으로 변할 정도니까. 이처럼 기억은 언제나 한 편의 소설을 만들어 내려고 하지.
p231~232 / 처음부터 용감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진정 용감한 사람이란 두려움을 가슴에 품은 채 세상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이들이야.
특히 두번째 인용한 구절은 어려운 일에 부딪혔는데 해내야만 할 때. 그럴 때 보면 좋은 문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돈내산이자 내가 쓴 독후감/서평/책 리뷰 77편 : 우리였던 그림자 (루이스 세풀베다 저)
'다독다독 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 79. 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0) | 2025.09.15 |
|---|---|
| 78. 유럽 도시 기행 2 - 유시민 (0) | 2025.09.11 |
| 76. 너무 늦은 시간 - 클레어 키건 (0) | 2025.08.18 |
| 75. 돈의 얼굴 - EBS 돈의 얼굴 제작진, 조현영 (0) | 2025.08.07 |
| 74. 세상 끝의 세상 - 루이스 세풀베다 (0) | 2025.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