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올해의 마지막 독서이지 않을까 싶다. 연말에는 좀 놀 생각이라 ㅎㅎ
10년 전 쯤에 동명의 영화를 이미 본 적 있다. 소설이 원작인 줄도 모르고 봤고, 이후에 소설이 원작임을 알았다. 호기심에 중고로 샀었는데 읽진 않았었다. 그러다가 교보문고 유튜브 채널에서 이 책을 추천하는 걸 봤다.
https://youtu.be/uQZcR1a8Y1s?si=SXVt102FG-a-OcmT
이걸 보고 나니 갑자기 책이 궁금해져서 사놓고 안읽었던 이 중고책을... 읽었다.
참고로 영화를 볼 땐 여주인공 에이미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책을 읽어도 에이미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똑같다 ㅎㅎ....
서구권에서 '남자가 싫어하는 영화' 상위권이라는데 굳이 그럴 이유 있나? 싶은. 그냥 결혼이 싫어지는 영화라고 봐야할 거 같은데.
암튼 책에 대해 말하면, 총 3부로 나누어 진행된다. 그리고 던의 시선과 에이미의 시선이 번갈아 나오는 식의 전개다.
1부
책 초반엔 에이미보다는 닉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하지만 서서히, 유부녀의 입장에서 겪어본 바로 에이미 입장이 이해된다. (정확히는 결혼 후 그녀의 변화에 대해 이입이 되는 거고 '한 인격체' 에이미에 대해서는 여전히 긍정적이지 않다.)
내가 초반에 닉에게 더 이입한 건 그와 나의 성격이 닮은 구석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거기까지. 결혼생활 동안 에이미가 쓴 일기를 보면서 서서히 분노가 올라왔다. 특히 부모의 간병을 에이미에게 떠넘긴 11년 4월 28일의 일기! 그리고 그 다음 이어진 (앞서 익히 예상되었던) 내연녀의 존재까지. 성격이 비슷하다고 결혼생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자를 편들 순 없다. 그리고 그게 소설 속에 드러난 게 239 페이지의 '고'였다.
즉, 나는 닉의 쌍둥이 여동생 '고'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볼 수 있었다.
닉의 불륜이 드러난 이후는 폭풍전개이고 눈을 뗄 수 없다. 닉은 에이미가 동의하지 않은 관계를 했고 어머니가 죽은 이후 에이미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에이미는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에서 임신을 했다는 과거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닉은 언론과 경찰에게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간다. 어찌나 흡입력이 좋은지 할 일이 있는데 할 수가 없다. 1부가 끝나길 바라며 책장을 넘긴다. 대체 이 작가 뭐지. 스믈스믈 사람의 마음을 흔들더니 이렇게 집착하게 만든다고? 이미 영화로 봐서 내용을 알고 있는데도?
한편 2011년 7월의 에이미 일기부터 좀 미심쩍다. 피를 싫어한다고 한 얘기에서. 아 이거 장치다. 임신 이야기가 나올 땐 더더욱. 이거 장치네. 임신 이야기는 너무너무너무 뻔한 장치다. 나는 영화를 먼저 봐서 에이미가 꾸민 장치임을 안다. 그게 이 무렵이었나? 싶다.
2부
아 맞다-하고 깨달았다. 이런 영화를 봐서 알고 있었는데도 착각을 했다. 에이미는 그동안 연기를 했다는 걸. 진짜 자신을 보인 적이 없었다는 걸. (하 이 훌륭한 작가 양반! 에이미가 별로라는 데는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그 상황에 동질감을 느끼게 하다니-한편 결혼생활 해본 여자들은 이러면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는 건가?!) 그러니까, 1부 후반에서 눈치채긴 했으나 실제론 그보다 더 앞선 시점부터 준비했다는 걸.
에이미가 못된 사람이고 상종 못할 사람인 건 이 2부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뭐, 에이미가 못된 사람인 것과 별개로 내가 가장 분노한 11년 4월 28일의 일기의 상황이 된다면 나라도 복수를 꿈꿨을 거다. 다만 에이미의 방식이 아닐 뿐. 그러고보니 이게 에이미와 나의 차이구나. 나는 결혼하고 제3의 자아가 나왔는데 에이미는 '자아'가 아니라 '페르소나'를 여러 종류 가질 수 있는 거였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페르소나'는 자아와 다르다. 만들어진, 꾸며낸, 자기 자신이 아닌 가면을 말하는 거다.
영화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던 전개가 진행된다. 에이미는 갈곳이 없어져 데시를 찾고, 닉은 점점 궁지에 몰린다. 이 와중 에이미의 이 대목들이 참 눈에 꽂혔는데,
"너도 알다시피, 아주 먼 옛날부터 비참한 남자들은 자신들의 남성성을 위협하는 강한 여자들을 학대해왔어." 데시가 말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종류의 지배를 생각하고 있다. 보살핌을 가장한 지배. 자기가 추울까 봐 스웨터 가져왔어, 어서 입고 내 눈을 즐겁게 해줘.
닉은 적어도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닉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게 내버려둔다.
데시가 그냥 닥치고 가만히 앉아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사실이다. 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깨달은 것이다. 닉과 내가 천생연분이라는 것을. 나는 조금 넘치고 그는 조금 부족하다. 나는 우리 부모의 지나친 관심 때문에 잔뜩 곤두선 가시나무이고. 그는 아버지에게 찔려 수많은 상처를 가진 남자다. 나의 가시와 그의 상처는 서로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나는 집으로, 그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얼마나 제멋대로의 사람인지가 너무 잘 보이지 않는가! 게다가 가시나무와 상처 이야기에서 에이미가 남겨두고 간 그 괴이한 나무인간이 생각난다. 에이미가 닉에게 '일은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할 듯한.
이후 에이미는 익히 알고 있고, 몰랐다 해도 예상 가능했던 시나리오를 실행하고 닉에게 돌아간다.
3부
3부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냥 이 인용으로 대신한다.
그는 말했다. "당신이 불쌍해서."
"왜?"
"왜냐하면 당신은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당신이 되어야 하니까."
아, 그러고보니 3부의 일부 내용은 클레어 키건의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1. 화라는 건 결국 기대를 상대가 저버렸을 때 나기 마련이다.
그게 나 혼자만의 기대였다면 그 감정이 바보같은 것이었음을 시간이 지나면 깨닫지만, 서로 약속한 것(이 책을 예로 들면, 에이미의 결혼기념일)을 깨뜨리는 거라면 그 화를 인정할 수 밖에 없고 상대에 대한 원망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약속은 신중해야 하는 거고 대표적으로 신중해야 하는 약속이 결혼(평생 상대만 사랑하고 좋은 남편 좋은 아내가 되겠단 약속)이지 않나 싶다.
2.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나 결함이 있다. 그래서 1부에서 나온 결혼 후 변해가는 모습이 나오는 거고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과정을 겪기에 에이미의 일기장에 분노하고 공감하게 된다.
그치만 솔직하지 못한 건 별개의 이야기. 누구나 자신이 품는 비밀이 있겠지만 부부간에는 그런 게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둘 다 참…
3. 인간은 타인을 통제할 수 없다.
닉도 에이미도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건 자기 의지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있게 한 것을 통제에 성공했다고 믿는 에이미가 "불쌍하다".
4. 책 전반적으로 스릴러답게 섬뜩하고, 근데 되게 빠져든다. 흡입력 강하다. 1부 감상에도 썼지만 책 놓기가 힘들 정도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역량이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5. 이 책/영화에 대해 남혐이니 여혐이니 하는 논쟁은 내 생각에 이해되지 않는다. 내 보기에 이 책은 부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부모 자식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괴물 에이미를 만든 건 그 부모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던 닉은 그 아버지가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자격이 없는 부모를 돌려까는 이야기라고도 봤다.
내돈내산이자 내가 쓴 독후감/서평/책 리뷰 93편 :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저)
'다독다독 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 94. 톨스토이 단편선 1,2 - 톨스토이 (0) | 2025.12.29 |
|---|---|
| 92. 부자 아빠 없다면 금융 공부부터 해라 - 천규승 (0) | 2025.11.29 |
| 91.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 핍 윌리엄스 (0) | 2025.11.27 |
| 90. 앗 뜨거워 Heat - 빌 버포드 (0) | 2025.11.21 |
| 89. 경제 상식사전 - 김민구 (0) | 2025.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