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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다독 2025

90. 앗 뜨거워 Heat - 빌 버포드

by 김연큰 2025. 11. 21.

예전에 <오늘도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를 읽을 때 구미가 당겨서 사놓은 책인데 여태 안읽었다. 사실 책을 사고 두께에 놀라서 여태 미룬 것도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서평을 봐도 이 책의 첫 인상으로 두께에 놀랐다는 말이 많다 ㅎㅎ)

 

"파스타를 삶기 위해 신문사를 때려치우다!" 라는 표지처럼,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운 게 내 상황과 비슷해서 땡겼다. 그런데 뜻밖에 이 책의 전체 줄거리 자체는 책 겉표지 바로 안쪽에 다 기술되어 있다. 정말로 그게 다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줄거리에 있지 않고 여정에서 나오는 메시지에 있다.

 

우선 저자의 노력과 끈기, 열정을 매우 높이 산다. 나라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라서'가 아니라, 글을 쓰다보니 반해서 라는 이유로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심지어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상황에서?

물론 나이에 호기심만으로 심지어 명성 높은 맛집에 쉽사리 취업한 것은 거짓말처럼 운이 좋은 부분이지만( 내용에 기술되어 있다시피 그는 정말로 운이 좋게 자리가 덕에 들어간 거였다) 쉽게 들어갔으니 쉽게 나올법 한데 별의 상황을 겪으면서도 버텼다는 것이 대단하다 느꼈다. 아무리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목적이 강하다해도 처음 겪는 것에 대해 적응하고 버티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책에서도 느껴지기에 저자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꾸준히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되고.

 

이것 외에 가장 주목하는 메시지는 따로 있지만 그건 후반에 따로 설명하겠다.

 


 

 

저자가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이 르포 같다. 다큐멘터리를 글로 풀어낸 느낌이 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무언가를 묘사하고 표현하는 데 뛰어난 자질이 있다고 느꼈고, 그런 표현 사이 사이에 인터뷰이의 말을 괄호치고 집어넣는 것도 현장감과 생동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읽기 좀 난해하긴 했다. 저자의 잘못은 아니다. 내가 이탈리아 요리, 아니 정확히는 거기서 사용하는 재료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분명 뛰어난 표현이라는 걸 알겠는데 실감나지 않는다(2장에 언급된 폴렌타가 이 케이스에 확실히 해당된다). 그나마 내가 좀 아는 파스타와 피자, 토스카나 소고기 스테이크 부분의 서술에서는 그런 생동감이 느껴져서 재미있고 몰입감도 뛰어났다. (경고하자면 이렇게 몰입되는 부분은 공복에 읽으면 곤란하다. 그 맛과 향이 느껴지는 듯하여 더욱 배고파지기 때문이다.)

 

또한 간혹 등장하는 여성비하적 표현이 불편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니 주방 문화의 특성이라 이해하고 넘기려고 해도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한편 그런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여자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다.

 

멋진 표현, 좋은 메시지, 뛰어난 전개방식 좋은 글이 갖춰야 대부분의 것을 갖추고 있지만 전개에서 핵심이 되는 원재료들과 요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따로 조사하면서까지 읽을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여 읽은 걸로 족할 듯하다.

 


 

가장 주목한 메시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적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4~5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4장에서는 돼지고기, 5장에서는 소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아주 자세히 다루지는 않지만 고기라는 원재료가 어떻게 주방에 들어오게 되는지, 대량생산이 어떻게 식자재를 망쳤는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있다.

 

p301 / 내 생각에, 대부분의 육식생활자들도 한 번쯤은 왜 자신이 고기를 먹는지 자문을 해보지만, 철학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 물론 나도 생각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내가 먹는 고기 중에 상당 부분이 아마도 자연스럽지 못한 과정으로 처리되고, 마치 고기가 아닌 것처럼, 이를테면 대량소비 시장의 재생가능한 공산품처럼 취급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호르면, 항생제, 갑갑한 우리에 가두는 잔혹한 사육 방법).
p392 / "하지만 프로슈토는 단 한 종류뿐이고, 그건 공장에서 만드는 게 아니라 겨울에 손으로 만들어서 2년 동안 숙성시키는 거지. 새로 나오는 것들은 좋지 않아. 달콤한 냄새도 나지 않는 나쁜 것들이야."
마에스트로의 말에는 2차대전 이후의 안타까운 축산농업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 익숙한 풍경은 이탈리아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슈퍼마켓을 비난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 하지만 뭔가가 아무튼(이번에도 20세기 탓으로) 엄청나게 잘못됐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마치 지구의 드넓은 지역에 까닭 모를 미각적 기억상실증이라도 퍼져서 쇠고기가 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가축도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잘 다뤄야 한다는 걸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p394 / "품종이 아니라 키우는 방식." 그것이 다리오 푸줏간의 비밀이었다.
p401~403 / 그래서 내가 만지작거린다는 이론이라는 건 '작음의 논리'다. (...) 이 문제의 본질은 속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크기에 있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가 우리의 문화를 망쳐놓은 게 아니다. 문제는 이미 존재했다. 사실은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음식을 무생물로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여타 생필품처럼 시장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점점 대량으로 생산하기에 이른 것이다.(...)
손으로 만드는 음식은 저항의 행위이며, 현대인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에 역행한다. 그것을 찾아서 그것을 먹는다면 그것은 지속될 것이다. 천 년을 이어져 내려왔는데 이제 계절처럼 덧없이 스러지는 신세가 됐다.

 

파스타를 다룰 나온 달걀도 결국 고기와 같은 맥락일 듯하다. 3장에서 등장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주방장 발레리아 피치니가 뉴욕에서 재앙의 결과물을 만든 이유도 어쩌면 달걀과 밀가루 탓일지 모른다. p241 '같은 양의 달걀, 같은 양의 밀가루' 라는 표현에서 그걸 암시하고 있던 아닐까.

내돈내산이자 내가 쓴 독후감/서평/책 리뷰 90편 : 앗 뜨거워 Heat (빌 버포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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