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미국 매체 최다 선정 올해의 책
2023 퓰리처상 수상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추천한 책 등등..
엄청난 수식어를 가진 소설이다. 이런 수식어가 많이 달리면 보통 기대 이하이거나 정말 좋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일지 궁금해서 그러니까 호기심에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간이다. '난 이런 류 소설 별로 그닥~' 인 사람인데 재밌게 읽었고, 근데 그렇다고 아주 좋냐? 하면 그 정도는 아닌.. 그렇지만 이 책이 왜 미국에서 그렇게 인기를 끌었는지는 알겠다 싶다.
"이동진 추천 서적" 시리즈를 구매할 때 이 책이 포함되었고, 2024년 7월 초-홀로 떠난 5일짜리 여름휴가 중 읽었다.
아래는 책 소개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20세기 초, 월 스트리트를 지배했던 한 사람이 있다. (중략) 풍요의 시대가 그 탄생만큼이나 빠르게 저물며 대공황을 맞을 때에도 베벨의 재산은 계속해서 증식했다. 그에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여기 베벨에 대한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시선이 있다. "그는 돈의 뒤틀림에 매료됐다. 돈을 뒤틀면, 돈이 자기 꼬리를 억지로 먹도록 만들 수 있었다."라고 베벨을 묘사한 소설 <채권>. 이 소설이 공상에 의거한 악의적인 비방이라며 명예훼손 소송을 건 베벨이 자신의 얘기를 풀어낸 자서전 <나의 인생>. 이 자서전을 대필한 아이다 파르텐자가 쓴 진솔한 후기 <회고록을 기억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앤드루 베벨의 배우자 밀드레드 베벨이 쓴 일기 <선물>이다.
이 책의 커다란 매력은 글에 따라 문체와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중략) 독자는 네 개의 목소리를 넘나들며 숨어있는 진실의 조각을 찾아야 한다. 유례없는 번영의 시대에 대한 생생한 묘사, 돈의 속성에 대한 통찰도 깊이를 더한다.
세번째 문단의 (중략)은 두번째 문단에 소개된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시선'에 대한 소개인데, 일부러 뺐다. '글에 따라 문체와 목소리가 달라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소개가 될 것 같고, 네 가지 이야기에 대한 소개가 오히려 이 책 내용을 독자만의 방식으로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휴가지에서 아침에 일정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저녁 식사 후 숙소에 돌아와 쉴 때 읽었기에 하루에 읽은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럼에도 3일만에 다 읽었다.
흡입력이 좋아, 중간에 놓기 힘든 매력이 있고 으레 소설이 그러하듯 중간 중간 복선이 잘 깔렸다.
추리소설 이야기가 나온 것도 결국 이 전체를 말하기 위한 거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1장 <채권>, 2장 <나의 인생>은 지루하다는 평도 있는데 나는 나름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다.
같은 내용을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시선으로 다루면 그 시선에 따라 어떤 내용이 들어가거나 빠질 것인지, 표현 형식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관심이 컸던 덕인 듯 하다.
주의: 아래 접힌 부분은 <트러스트>의 중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읽을 계획이 있다면 여기서 그만 멈춰주세요.
여자인 나조차도 3장 <나의 인생>을 쓴 아이다가 여자일 거라 생각 못했다.
하긴 자서전은 그 주인공의 색채가 더 잘 담겨야 할테니까.
근데 재밌는 점은 그걸 깨달은 후 밀드레드의 일기인 4장 <선물>의 내용은 어떤 내용이 나올지 예상하게 되었다.
(다른 분들의 서평을 읽어봐도 - 눈치 빠른 분들은 1장에서 후반부 내용을 눈치채고, 늦어도 2장에서는 눈치를 채는 거 같다. 난 더 눈치가 없어서 3부 초반에 2장을 쓴 사람의 성별이 여성임을 알고서야 눈치챘다.)
수상하리만치 전통적 여성상에 밀드레드를 가두려 하는 앤드루의 시도
수학에 재능이 있던 밀드레드
밀드레드 사후 투자 감각과 실적이 떨어진 듯 보였던 앤드루
그럼 밀드레드가 실세였겠지 - 라는 판단으로 귀결되는 것.
그 생각이 미치자 1장 배너의 소설 제목은 왜 <채권>인지, 4장 밀드레드 일기 제목은 왜 <선물>인지 생각하게 됐다.
둘 다 금융 용어다. 영어로 놓고 보면 다른 뜻도 많다. 한글로 봤을 때와 달리 뭔가 숨은 의도가 있던 것 아닐까?
혹시나 내가 잘못 생각했을까 싶어 원서에 대한 정보를 보니 실제로 밀드레드 일기 제목은 'Futures(금융에서의 선물)'다.
정리하자면 책 제목은 Trust (신뢰, 믿음, 신탁, 기업합동, 신용)
1장은 Bonds (채권, 결속, 본드, 유대, 회사채)
4장은 Futures (미래, 앞의, 선물先物, 장래)
결국 그러했다. 다 읽고나서 보니 이 단어들이 하나 하나 의미가 남다르다.
그런면에서 내가 영어에 익숙했다면 영어 원서로 읽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잠시 주인공 앤드루 뒷담(?)을 하자면 개저씨 행태가 참ㅋ
남의 것을 뻔뻔하게도 자기 것으로 여기고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는 게.
하지만 그건 내 입장이고, 아마 이게 실화라면, 앤드루 본인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을 거다.
가져가서 자기것인양 해놓고 정말 자기것으로 믿어버린 거지. 리플리 증후군처럼..
그러고보면 우리 모두는 강도가 약하냐 강하냐의 차이일 뿐 모두 리플리 증후군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조차도 그런 게 있을 거다. 깨닫지 못했을 뿐.
자서전을 집필한 아이다를 보면서도 느낀 게 있다.
그녀는 궁지에 몰렸을 때 같은 소재를 여러 버전으로 쓴다.
그러면서 문득 무엇을 보강해야 하는지 깨닫고 원래의 글 완성도가 높아진다.
이걸 보면서 두 가지 생각
첫째. 어쩌면 작가인 디아즈 본인이 그걸 경험한 거 아닐까
트러스트 이 책 자체가 같은 일에 대한 네 가지 버전의 이야기
둘째. 나도 그런 식으로 글을 쓰면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까
독서를 하면서 이런 저런 영감이 떠오르듯이
책 마지막에 옮긴이의 말이 있는데 이 부분이 매우 공감되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
그리고 페미니즘
이 소설 내용이 뭐였더라? 를 다시 새기려면 옮긴이의 말만 다시 읽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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