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읽고 싶어 선택했던 책이다.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평이 좋아서 샀다'는 메모가 있는 걸 보니 온라인 서점에서 에세이류 책을 이것 저것 보다가 평이 좋아서 샀던 모양이다.
2024년 6월에 읽었고, 읽을 당시의 내 상황과 주변 환경은 또렷이 기억난다. 마음이 많이 힘들던 때였고, 갑자기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 지역으로 홀로 2박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이 책은 숙소에서 쉴 때 읽었다.
이 책은 유시민의 책처럼 쉽게 잘 읽힌다. 잘 쓰는 작가란 거겠지.
그러다보니 금방 읽었는데 생각하게 하는 부분도 많았다.
인용한 책 중 영업당한 것도 몇 권 있다. 그만큼 매력적으로 쓴 것이라 볼 수 있겠지.
<단속사회>, <사는 게 뭐라고>, <비행운>, <앗 뜨거워 Heat>, <고등어를 금하노라>와 같은 책이 궁금해졌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2024년 12월 14일 기준으로 <앗 뜨거워 Heat>를 제외하고는 다 읽었다.
고로 언젠가 그 책들의 이야기도 올라올 것이다 ㅎㅎ
이 책은 총 3개의 ROUND로 나누어 본인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간다.
ROUND 1. 엉망이었지만 진심이었던
아마도 20대 때 할 법했던, 여러 시행착오들 -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덤덤히 쓴 것으로 보인다. 여행 연애 우정 직장생활 등등..
난 딱히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아서인지 연애 우정 부분은 음 그니까.. '그럴 수 있지~' 정도의 공감이고 '아 맞아 맞아' 정도까진 아니었다만 여행 부분은 찐공감.
직장생활 부분은 최근에 겪은 어려움이 있다보니 좀 아.. 하면서 조언 새기듯? 읽었다. 특히 이 부분.
p56 “나와 말이 안 통하는 사람, 내 말에 토를 다는 사람,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다. 심지어 그런 사람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고 일까지 해야 하다니, 그건 얼마나 큰 고통인가. 하지만 그들이 없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까? 인간의 개성은 타인과 내가 부딪치는 경계에서 마찰흔처럼 드러난다.”
ROUND 2. 할 수 있는 건 그저 걷는 것뿐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즉 내 잘못이 아니니 본인을 탓할 필요도 없고 그저 있는 대로 덤덤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을 다루었다고 이해했다.
저자 본인의 흑역사도 같은 이유로(흑역사는 지우거나 되돌릴 수 없다 = 본인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 배치한 거 같다.
그런데! 이 쪽이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뭔가 인생 선배님께 고민상담을 한 느낌.
첫째. 직장 생활 이후에 대해
요즘 내 개인적인 고민은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것인가이다. 사회 초년생까지만 해도 "10년 다니면 오래 다니는 거 아닐까?" 생각했는데 어느덧 그 10년을 훌쩍 넘었다.
별로 오래 살고 싶지 않은 내 입장에서 100세까지 살 수도 있다는 표현이 너무 끔찍하지만, 현실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난 아프기 싫어서 건강 관리를 열심히 하는데 이게 장수 쪽으로도 효력을 발휘해서 진짜 오래 산다면...? 아아악) 그러다보니 직장 생활 이후에 대한 고민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부분이 나에게 크게 와닿았다.
p134 “나이가 든다고 해서 특별히 확실해지는 건 없다. 계속되는 불안함과 막막함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이걸 못하고 저걸 잘해. 나는 이걸 좋아하고 저걸 싫어해.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을 하느라 급급한 대신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p145 “아무리 뭐라고 해도 일보다는 인생이다. 일의 바깥에도 삶이 있다.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다. 일이 우리를 의심이 없는 괴물로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또는 자신이 만든 고치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그때가 비로소 잠시 멈춰 서서 의심해야 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의심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둘째. 주체적 소비에 대해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책이 아래 둘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구입하기 전에 고민했던 게 있었다. 에리히 프롬의 책을 검색하다보니 이 책도 발견하게 됐는데 목차를 보니 여기에서도 무기력(정확히는 무력감)을 다루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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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 EBS 자본주의 제작팀
그 유명한 EBS 자본주의 다큐멘터리를 엮은 책이다. 꽤 오래 전 산 책인데, 2024년 6월에야 읽게 되었다.당시 경제 공부에 갑자기 눈을 뜬 동거인이 이 책 읽고 싶다고 해서 난 아직 안읽었지만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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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책 모두 소비를 다루는 부분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소비를 다룬다. 소비라는 건 사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뗄 수 없는 이야기인 건 맞다. 소비가 있기에 돌아가는 시스템이니까.
그 부분에서 네일 케어 사례가 나온다. (이 부분에서 <비행운>을 읽고 싶어진 것이었다는 게 또렷이 기억난다.) 난 네일 케어를 하지 않는다. 남의 돈으로 체험한 적 있지만 결론은 들인 시간과 돈 대비 만족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면 난 여기저기 써보고 내가 만족감을 느끼는 소비만 하게 되면서 충동구매나 비주체적소비가 줄어든 듯하다.
p151 “다들 돈 불리는 법이나 돈을 아끼는 법에 대해서만 얘기했지,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준 적이 없었다.”
p152 “소비는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쿨한 사람, 의식 있는 사람, 트렌디한 사람, 잘나가는 사람, 괜찮은 사람, 멋진 사람.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돈을 써야 했다. 돈을 쓰지 못하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소득 대비 소비가 적은 편이라고 금융 앱에서 알려준다. 그건 20대 때 쓸만큼 써본 덕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를 충동구매 해보기도 하고, 시류에 따라 '이건 사야 한대' 라는 걸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보기도 하면서 어떤 게 나에게 필요한 소비인지 필요 없는 소비인지를 배운 거 같다. 그래서 나는 20대에게는 무작정 재테크하란 말 안한다. 그냥 사보고, 다만 그 결과를 생각해두라고 한다.
셋째.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p174 “좋아하는 일은 오랫동안, 꾸준히, 열심히 해도 질리지 않는 일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사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조차 엄청난 행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많은 사람이 서른다섯 살이 넘어서야 자신이 하는 일이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 일은 한때 우리를 질리게 했고, 여러 번 벗어나보려고도 했던 일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일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또 좋아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한때는 미술, 음악이라고 생각했고 몇 년 전부터는 글쓰기 아닌가? 싶은데 그것도 지금은 모르겠다.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이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에 속하기는 한다. 저자 말처럼 나를 질리게 했고, 벗어나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던 일인데 돌고 돌아 다시 그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회사를 언제까지나 다닐 순 없고 그 다음을 준비해야겠는데 문제는 그럴 에너지가 현재는 없다. 한창 열정 넘칠 때는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어떤 것도 그럴 에너지는 없는 것 같다. 쓰고보니 에너지가 없는 게 문제인가.
저자의 카페 말아먹은 썰을 보니 미련을 남기느니 해보는 게 맞긴 한데 역시 언제 어떻게 저질러볼 것이냐가 고민이다.
ROUND 3. 초조해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가치관의 차이일 뿐 정답이 없는(하지만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주어지는 암묵적인 룰은 있는) 것들에 대해 저자가 생각하는 생각을 서술하고 있다.
재능-노력-성공, 사랑, 몸무게, 자녀교육, 주거환경 등..
아마 이런 걸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부분이다. 나는 이미 그런 쪽의 가치관이 또렷해서 그냥 술술 읽었지만 몇 가지 느낀 걸 메모해보면 다음과 같다.
p196-197 “내가 나를 쥐어짜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희미하게 떠오르는 깨달음은 그 쥐어짬의 과정에 어떤 희열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쾌감과 자극으로 가득 찬 특별한 인생과 밋밋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인생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다.“
나는 일정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적당선을 달성하면 만족하고 멈추는 게 내 지향점이었다. 무려 10대 시절부터 어떤 적당선의 목표치가 있고 그걸 달성하면 ‘그만하면 잘했어’ 하고 멈췄다. 욕심이 별로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노력을 하고 싶지 않은 게으름뱅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p251 “나이가 들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낄 수 있게 되나보다.”
요즘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작년과 올해, 직장 생활이 이토록 괴로웠던 경험은 직장인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이었고,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생기면서 가족 내 갈등의 경험을 근래 몇 년 겪다보니 이런 경험 아니었음 그리 와닿지 않았을 부분들이 요즘 책속에서 보여서 말이지.
이 책에서 다룬 내용 중 본인 인생에 고민이 되는 지점이 있다면 읽어볼만한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도움말이 될 수도, 위안이 될 수도, 회초리가 될 수도 있다. ROUND 2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돈내산이자 내가 쓴 독후감/서평 9편 : 오늘도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한수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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