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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다독 2025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하인리히 뵐

by 김연큰 2025. 2. 27.

옛날에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 마음이 동해서 읽었던 책인데,

 

2025년 2월 20일.

회사에서 매우 좌절스러운, 억울한, 그렇지만 내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을 만나고 참담한 마음으로 집에 와서 다시 꺼낸 책이다.

마치 명예를 잃은 느낌인데다, 나에게 상처준 사람들을 죽여버리고 싶다 생각하던 와중 이 책이 생각나서 허겁지겁 읽었다.

 

유시민은 <청춘의 독서>에서 이 책을 이렇게 소개했다.

신문사가 언론 자유라는 아름다운 이름 뒤에서 고의적인 왜곡 보도와 허위 보도를 자행함으로써 누군가의 인권을 유린하고 범죄를 유발했다고 하자. 누가 어떻게 이 불의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 오히려 그 보도를 진실이라고 믿고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를 욕하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주인공 카타리나가 <차이퉁>이라는 신문의 기자, 베르너 퇴트게스를 살해하고 뫼딩 경사에게 자수하면서 시작된다. 1974년 2월 20일 수요일부터 24일 일요일까지의 5일간의 일을 다루며 왜 카타리나가 그를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를 '가급적 자극적인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노력하는 티를 내면서' 서술한다.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라는 부제가 있는 소설(저자인 하인리히 뵐은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니라 이야기라고 강조하고 있다지만 이는 논외로 하자)로, 사실상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폭력은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언론이 배설하는 가짜뉴스에 의한 폭력이다. 유시민은 '고의적인 왜곡 보도와 허위 보도'라고 했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걸 요약하면 결국 '가짜뉴스'다.

 

가짜뉴스는 사실이 전혀 없는, 거짓으로 점철된 뉴스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사실이 있고, 다만 이 사실을 살짝 비틀거나(과대/과장, 단어를 수정하여 뉘앙스를 변경하기 등) 거짓을 섞어 본질과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경향신문의 한 기사를 보면 "국내에서도 가짜뉴스는 ①정치·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②고의로 왜곡·날조하고 ③언론 보도로 가장하는 거짓 정보로 대략 정의돼 있다" 라고 하는데 이 소설에 나오는 <차이퉁>이라는 매체에서 다룬 카타리나에 대한 기사가 딱 이러하다.

 

재밌는 점은 마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같은 이 소설의 첫 장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 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 중에 <빌트> 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빌트> 지라는 언론 매체가 하는 짓을 저자가 고발하겠다는 뜻으로 보이지 않는가? 소설이 끝을 맺은 후 이어 나오는 "10년 후 - 하인리히 뵐의 후기"를 보면 저자도 딱히 부정하지 않는 것 같다. 그에 이어 나오는 "작품 해설"을 보면 이 소설이 나온 배경이 나와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부분. 일부는 내용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있어 이 책을 읽을 분을 위해 접어둔다.

 

18장에 나오는 내용에 따르면 다정함과 치근거림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다정함은 양쪽에서 원하는 것이고, 치근거림은 일방적인 행위. 즉, 카타리나에게 괴텐은 다정했고 그 외 남자들은 치근댐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41장에서 도청(盜聽)을 비판한다.

전체적인 내용에서 굳이 있지 않아도 되는 내용인데 넣었다는 것은 뭔가 의미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대체 <차이퉁>은 어디서 정보를 얻어서 이런 보도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든다. 물론 누군가 정보를 빼돌렸겠거니 짐작은 가능하지만 누가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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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장에서 바이츠메네가 차이퉁과 커넥션이 있다는 내용이 있다. 보도 과정과는 상관없을 수 있으나 뤼딩도 <차이퉁>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에서 언론이 공정할 수가 없음을 내비친다.

 

어쩌면 이 소설의 부제가 말하는 대상은 (그래도 나름 냉정함과 침착함을 유지하는) 카타리나보다는 블로르나 부부일지도 모른다. 근거는 47장~52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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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장에서 <차이퉁>이 저지르는 왜곡보도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고, 49장에서 그 보도가 어떤 점이 문제인지를 짚는다. 다만 그 페이지에서는 두 가지(어머니의 죽음, 별장 열쇠가 카타리나에게 간 과정)만 다루고 있지만 내가 더 주목한 건 118페이지에서 정작 카타리나에게 치근댔던 슈트로입레더는 지워지고, 119페이지에서는 블로르나 부부에 대한 왜곡 보도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타겟- 그러니까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사람이 변해가는지가 49장에 나온다. "교양을 갖추고 성공한 사람들조차 얼마나 분노케 하고 얼마나 거친 방식의 폭력까지 생각하게 만들었는지 알리기 위해서"(p124). 그리고 이런 피해자들의 망가짐은 51장 및 52장에도 나온다.

 

슈트로입레더, 블로르나 모두 사회적 상위계층에 속한다. 하지만 왜곡보도로 인해 한쪽은 서서히 망가지고 다른 한쪽은 그가 한 잘못은 지워지고 오히려 피해자인 듯 둔갑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보던 상황 아닌가 싶다.

 

53장, 카타리나에 대한 평 중 "꼼꼼하고 정확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하고" 라는 대목이 있는데, 똑똑하고 강한 여자를 무서워하는, 그러니까 여혐이 그대로 표현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나처럼 독일어식 이름에 익숙하지 않다면, 인물 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 사람이 사람이던가? 사람은 언제 등장했던 사람이더라? 이런 식으로 헷깔릴 있어서 나는 전체 번을 통독한 아예 인물 관계도를 만들면서 다시 읽었다. 이렇게 해놓고 보니 한결 이해가 쉬웠지만... 아 다시 봐도 복잡하다. 소설 두께에 비하면 꽤나 복잡한 관계도다.

결말 혹은 사건의 본질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흐리게 처리했다.

 

뒷 이야기를 조금 보태자면, 이 글 도입부에 "이 책이 생각나서 허겁지겁 읽었다"고 표현했는데, 이 책을 읽고 분노, 억울, 참담함 등등의 부정적 감정이 많이 해소됐다. 역시 책은- 특히 소설은 치유의 힘이 있다.

 

 

사족. 이야기 vs 소설의 근본적 차이를 벤야민이라는 사람이 화자와 청자 사이의 경험을 주고받는 소통이 가능한가에 있다고 설명했다는데(p145) 정의대로라면 <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 - 리디아 데이비스>는 이야기라고 보기 어려울  같다.

 

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 - 리디아 데이비스

2024년 7월에 읽은 아홉 번째 책.하지만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제목이 매력적이라고 느꼈고 (역시 책 제목을 잘 지어야)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책 끝머리 추천의 말에도 있는 말인데- “전형적

kim-lotus-root.tistory.com

 

이제 2024년 1월부터 2025년 2월 27일까지 읽은 책은 모두 후기를 올렸습니다. 앞으로는 책 한 권씩 읽을 때마다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는 한강 작가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회사 일이 바빠서 속도를 못내고 있지만.. 곧 올릴 수 있겠죠 ㅎㅎ)
3월부터는 책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에는 다른 주제를 게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