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읽은 <불안>에서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해결책 중 하나로 철학을 제시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다룬 철학은 어떤 걸까? 궁금해서 읽어보게 됐다.
이 책은 여섯 명의 철학자를 다루는 책인데, 목차가 좀 특이하다.
I 인기 없는 존재들을 위하여 - 소크라테스
II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 에피쿠로스
III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 세네카
IV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 몽테뉴
V 상심한 존재들을 위하여 - 쇼펜하우어
VI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 니체
왠지, 사람들의 불안을 여섯 유형으로 나누고 그에 맞는 철학자를 추천한 느낌이랄까?
아마 <불안 - 알랭 드 보통>을 읽지 않고 이 책만 봤다면 그런 생각이 안들었겠지만 말이다.
불안 - 알랭 드 보통
2024년 8월에 읽은 두 번째 책. 나는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글을 처음 접한 건 수년 전 어떤 병원에 매주 진료 받으러 다닐 때였는데, 그 병원은 무료로 책 대여를 해주었다. 책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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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4년 9월 말에 읽기 시작해서 10월 초까지 읽었다.
다른 철학자의 이야기를 풀다보니 읽다보면 그 철학자에 몰입하여 이 책의 저자가 드 보통이라는 걸 잊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비유하거나 현실을 언급할 때면 '아 맞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책이었지' 하고 깨닫게 되곤 했다. 그만큼 글을 잘 쓴다는 것이겠지. (부럽다 ㅠㅠ)
각 부제(예: 소크라테스를 다룰 때 왜 인기 없는 존재를 위하여인가?)가 첨엔 난해하다고 느꼈는데 읽다보면 아! 하고 머리를 때리는 깨달음이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각자가 가진 불안의 원인을 한 철학자의 이야기와 매칭시켜 풀어주려 하고 그건 꽤 성공적이다. 혹은 역으로 철학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내가 이래서 불안했던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각 철학자가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경우는 그 표현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읽기 힘들 때도 있었다. 소크라테스 때 약간 힘들었고, 세네카는 매우 힘들었다.
사실 세네카는 처음 들어보는 철학자였으나 '좌절한 존재를 위하여'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뜻밖에 몽테뉴의 철학이 내 생각과 많이 비슷해서 놀랐다.
몽테뉴 파트에서 말하는 ‘부적절한 존재’는 인간 자체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가, 어느 순간 - 정확히는 192페이지 이후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책을 쓰는 이유(불특정 다수에게 말걸기), 여행의 목적(다른 문화를 이해하기)에 대한 이야기가 참으로 와닿았다.
특히 여행의 경우 역시 여행지에 대해 정보 없이 가야 더 많은 게 보이고 깨닫는 면도 있는 거 같다. 문화유적에 대해선 미리 알고 가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사실 내 경험을 돌이켜보면 꼭 그럴 필요도 없고 그냥 현지에 가서 지식을 공유해줄 사람(현지 가이드라던가)을 만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몽테뉴가 지적한 것 중 제도권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었는데, "학문만 가르치고 지혜가 없는" 교육은 현재도 마찬가지이기에… 한숨.
어려운 책에 대한 무쓸모함과 쉬운 책에 대한 찬양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202~204 페이지에 언급된 인디오 학살에 대한 이야기에 <마지막 거인 - 프랑수아 플라스>이 생각났다 ㅠㅠ
마지막 거인 - 프랑수아 플라스
이 책은 내가 2024년에 읽은 책 중 최고의 책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하는 책이다. 이렇게 얇은 그림책이 최고의 책이라니? 라며 반문할 수 있지만 나에게 이 책보다 큰 감동과 괴로움을 동시에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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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ㅋㅋ 아 진짜 재밌는 사람이었다. 염세주의자라는 거 외에 사실 잘 몰랐는데 ㅋㅋ
그의 생애를 보니 유산 물려받아 돈은 남아돌고, 여혐 장난 아니다가 (40 넘은 사람이 열일곱에게 접근하는 건 또 뭐야) 말년에 인기 얻으니까 갑자기 생각을 바꾼다.
삶에 대한 부정적 생각, 잠은 많이 자야 한다는 소신 등 기존의 지식인 혹은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세네카 좋아한다면서 소음에 대한 의견은 동조 못해! 하는 것도 넘 웃김ㅋㅋ 어찌보면 가장 인간다운 철학자일지도.
하지만 정작 그의 생애를 다룬 부분을 제외하고는.. 임팩트가 없었다. 나와는 맞지 않는 철학자인 듯. 읽다보니 지루해서 졸리기까지 했다.
그가 말한 ‘인간 존속을 위한 사랑의 의미’가 맞는 말이라 해도 달라지는 게 무엇인가? 결국 사랑에 늘 실패했던 자기 위안을 위한 것 아니었을까? 대를 이어야 하는 모든 살아있는 것의 본능에 의해 더 좋은 상대를 찾아야 하는 건 맞는 말이지만 그걸로 사랑에 실패한 걸 위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덧붙여 266 페이지부터 나오는 현대인의 러브 스토리 속 남주는 너무 너무 너무.. 별로다.
니체 부분은 좀 특이하다. 이 책 전반적으로 철학자의 일생을 전반적으로 다루면서 그의 철학에 대한 복선을 살포시 깔아주고, 생애를 다룬 그 다음부터 본격적인 철학을 설파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니체 부분은 전체적으로 그의 생애를 서술하며 그의 철학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아마 니체에 대해 다루는 건 이 방식이 더 낫다고 저자가 판단한 모양이다.
니체의 철학은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데 실제로 산에 비유를 많이 했고, 그래서 큰 환희를 느끼려면 그만큼 괴로움도 많이 느껴야 한다는 언급도 있다. 산에 인생을 비유한 부분은 꽤 적절하고 납득이 됐다.
인생은 원래 고통스럽다는 게 모든 철학자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그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것에 대한 대답이 철학자마다 다르므로 불안은 철학으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알랭 드 보통은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인정한다. 세네카와 몽테뉴가 나를 치유해줬기에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됐다. 니체도 그 개인이 여혐을 했던 것만 빼면 그의 사상 자체는 나에게 위로가 됐다.
각 철학자에 대해 내가 이해한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소크라테스: 성과주의나 인정 욕구에 목말라 불안하다면 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에피쿠로스: 광고에 잘 낚여서 쓸데없는 것도 사버리는 사람에게 추천. 쾌락주의와 자본주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다.
- 세네카: 변화 불가능한 현실이라면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 몽테뉴: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므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혜를 키워야 한다.
- 쇼펜하우어: 삶의 고난과 근심은 삶에서 얻는 과실이나 이득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가혹하다.
- 니체: 인생은 원래 고통의 연속이며 피할 수 없으므로 제거하려 하기보다는 현명하게 대처하라.
내돈내산이자 내가 쓴 독후감/서평 34편 : 철학의 위안 (알랭 드 보통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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