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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다독 2024

32. 들풀의 구원 - 빅토리아 베넷

by 김연큰 2025. 2. 20.

알라딘에서 편집장의 추천 8월 9일자에 뜬 거 보고 책 소개 읽다가 궁금해서 구매했고 2024년 9월에 읽었다. TMI인데 나는 새로운 책을 찾아볼 때 알라딘 - 편집장의 추천 코너를 참고하는 편이다. 여기는 광고 지면이 아니라 각 분야 MD들이 직접 추천하는 것이라고 들어서.

 


 

읽어보기 전에 예상하기로 옛날에 읽었던 <야생초 편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비슷한 듯 다른 결이다.

야생초 편지는 감옥 투옥 중 야생초에 대해 알게 되면서 쓴 에세이고, 이 책은 가난, 상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얻은 집을 가꾸고자 잡초 씨앗을 심으면서 희망을 키워가는 에세이라고 보면 되겠다.

 

둘의 공통점은 힘든 상황을 야생초/들풀로 이겨냈다는 것. 그리고 야생초/들풀을 잡초로 취급하지 않는 것.

즉 힘든 상황을 이겨낸 건 동일한데, 야생초를 우연히 접했느냐 vs 의도적으로 심었느냐의 차이가 있고, 저자 성별의 차이가 있고, <야생초 편지> 쪽은 그림이 더 자세한 반면(작가 본인이 그린 것이다) <들풀의 구원> 쪽은 글로 들풀의 특징을 서술했다.

 


 

책의 초반 1/4 가량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은 언니와 저자가 품었으나 태어나지 못한 아이. 지금 생각하니 <흰 - 한강>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칠흑의 느낌이 더 강하다.

 

흰 - 한강

제목과 잘 어울리는 겨울에, 2024년 12월에 읽은 책이다.이 책에 대해서는 소설이라기보단 시 같다는 평을 들은 바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에세이 같았다. 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로

kim-lotus-root.tistory.com

 

또한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울러 애도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애도하는 사람을 품는 건 어렵다. 곁에 있어도 아무 도움이 안되고, 곁에 없으면 더 상처가 된다.

그런 어두운 시간을 지나 정원을 만들고 아들과 가꾸기 시작하며 씨앗2에서는 점차 치유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랑스러운 아들 덕에 나도 몇 번이나 미소지었다.

 

하지만 얄궂은 운명은 그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씨앗3으로 가면 아들에게 나타난 당뇨의 발견, 그리고 그 대응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나온다. 투병이란 힘들다. 외할머니를 보면서 느꼈다. 본인이 가장 괴로울 것이고, 주변인도 힘들다. 게다가 저자의 아이는 너무 어린데..

 

그래도 저자는 상황 판단을 잘하고 적응을 잘 하고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173페이지에서 "아드님을 데리고 왔다가 다른 아이를 데리고 가는 셈" 이라는 간호사의 말에 자신을 데리고 가지 않는다는 의미로 생각한 아이가 울자 간호사를 쏘아보지만, 퇴원 후 아이의 혈당을 조절하는 조치를 하면서 다른 아이가 되어 돌아왔다는 걸 인정한다(187페이지 참고).

 

이어서 본인 및 본인의 가족이 아팠던 이야기를 한다. 이처럼 씨앗3은 아픔과 상실 그리고 극복과 적응에 대한 이야기다. 극복하며 적응하고 있다는 것은 213 페이지부터 잘 드러난다. 그리고 마침내 텃밭을 잘 만들어놓고 씨앗3을 맺는다.

 

씨앗4는 어쩌면 가장 행복한 때이다. 아들과 정원을 가꾼 사계절을 다루는데 당연히 약간의 오르막 내리막은 있으나 결국 본인들이 원하는 걸 대부분 이루고 얻는다. 아마도 거의 유일한 예외는 닭을 키우지 못하게 된 것.

 

씨앗5는 사랑을 다루지만 어둡다. 도입부 소개된 식물부터 심상치 않다. 이 책은 매 씨앗 도입부에 컬러로 소개된 식물 삽화가 그 씨앗이 어떤 이야기를 다룰지 복선 역할을 하고 한편 그 식물이 소개된 이야기가 그 씨앗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블랙베리(상실과 슬픔)가 소개된 게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부모님과 얽힌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중후반부 어머니가 병에 걸려 생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사랑하지만 서로 상처주고 다시 사랑을 깨닫고 그런 과정에서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씨앗6은 저자 입장에서는 간병, 어머니 입장에서는 투병이다. 엄마와 할머니가 생각나서 읽는 내내 맘이 좋지 않았다.

 

돌봄 정확히는 간병의 삶은 고통스럽다. 직접이라기에는 간접적이고 간접이라기엔 직접적으로 겪어봐서 안다. 엄마가 얼마나 괴로웠을지도 어느 정도는 안다. 회사에서 힘든 건 퇴사하거나 이직하면 해결되지만 간병은 그렇지 않다. 간병 대상자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간병 대상자의 힘듦, 괴로움, 고통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만 간병인의 괴로움은 누가 달래주는 경우도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씨앗6에서의 저자는 과거의 내 엄마다. 미래의 나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대목을 읽으며 너무 가슴이 아팠다. 특히 우드랜드해바라기 부분은 엄마가 한창 힘들 때가 떠올라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거 같았지만 하필 이걸 읽을 때 장소가 집이 아니었기에 꾸욱 참았다. 그리고 결국 어머니는 운명하신다.

 

씨앗7과 8은 어머니 사후 정원을 다시 돌보게 된 이야기다. 홍수로 망가진 정원을 보수하고 다시 씨를 뿌리며 희망을 품는다. 아래는 씨앗8에 있던 문장 중 간직하고 싶었던 문장이다.

  • 나는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기 위해서 이 땅을 팠지만, 땅을 갈면서 내가 발견한 것은 야생으로 돌아가는 길, 세상의 경이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 죽음 곁에 앉아 있는 법을 아는 것이 다가올 일을 마주할 용기를 줬지만, 그렇다고 고통까지 사라지지는 않더라고 말했다.
  • 정원이 내게 가르쳐준 것을 기억한다. 달리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을 때는 앞으로 자라날 작은 것들에게 돌아가라는 교훈이다.

 


 

분명히 작가는 영국인인데, 왜 이리 우리나라 현실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지. 이래서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다고 하는 걸까.

 

각 이야기마다 들풀을 소개한다. 각 들풀이 어떤 효능이 있는지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하는지 자세히 적혀있다. 마녀사냥으로 죽어간 유럽 여인들이 남긴 유산일텐데, 매 이야기마다 이 부분을 읽으니 감탄이 돋았다. 우리나라 한의학/한약학에 못지 않은 느낌. 동서양 모두 어떻게 이렇게 연구하고 그 지식을 축적하게 됐을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큰 궁금증은 - 저자의 아들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이다.

박물관을 지었을까?(281페이지)

닭을 키우는데 성공했을까?(245페이지)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그래서 내 책상에 붙여두고 있는 글귀를 소개하며 맺는다.

 

슬픔은 우리와 함께 산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우리의 나날을 몽땅 차지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내돈내산이자 내가 쓴 독후감/서평 32편 : 들풀의 구원 (빅토리아 베넷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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