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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다독 2024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by 김연큰 2024. 11. 25.

무기력이란 무엇일까? 내 상태는 무기력이 맞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던 어느 날, 이런 문구를 보았다.

번아웃은 가용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 무기력은 잔여 에너지가 있지만 사용 방향 컨트롤이 안 되는 상태, 게으름은 에너지가 있고 스스로 딴 짓에 쓰기로 결정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기력 상태가 맞았다. 에너지는 있지만 내가 사용하던 방향으로 사용하다가 좌절감을 느끼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여러 차례 마주했고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던 상태. 그게 2023년 말부터 2024년 6월 무렵까지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문장이 참이라는 근거는 없는 상황이라서 진짜 내가 무기력 상태가 맞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무기력>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다 발견한 게 에리히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라는 책이었다. 책 표지 우측 하단에 있는 '국내 미발표작'이라는 표기가 더욱 구미를 당기게 한 점도 있다. (이렇게 마케팅에 낚이고)

 

이 책을 접하고 내가 원하던 답은 뜻밖에 금방 얻긴 했다. 책 뒤표지에 있는 문구인데

당신이 무기력한 이유는 ‘남이 바라는 나’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거 하나로 정리된다. 예전의 나는 회사에서 어떤 반응을 듣더라도 나다운 나로서,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 식으로 일을 했고 또 그렇게 성과를 이뤄내곤 했다. 하지만 이 당시의 나는 내 방식으로 밀고 나가서 문제가 됐다. 처음 겪는 상황에 상당히 당황해서 방향성을 잃었고 결국 남(회사 문화, 상사)이 바라는 나로 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고서야 깨달은 것은, 이전 회사에서 내 방식으로 일할 수 있던 것은 회사 문화 및 상사가 그 방식을 지지해준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 자체에 대한 나의 평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에리히 프롬의 책을 처음 읽은 건 아니다. 소장 서적 중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있다(내가 프롬에게 반한 결정적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충의 특징을 알고 있는데, 한마디로 어렵다. 이해가 어렵다는 거다. 몇 번이고 곱씹어 읽어야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심지어 이 책은 얇은데 어렵다. 두 번 정독하고 한 번 통독했다.

 

이 책은 프롬이 무기력에 대해 쓴 글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완성하고자 한 거 같은데 (책 도입부 일러두기를 보면 ‘주도적 삶에 대한 에리히 프롬의 글을 모아 엮’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어려운 듯 느껴진다.

심지어 핵심 내용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있는 내용이라 굳이 샀어야 했나 싶었다.

 

그래도 무기력으로 고생하고 있거나 내가 무기력일까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에서 주시할만한 몇 가지 내용이 있다.

 


 

우선 자발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자발성이란 진짜 자기 감정을 느끼고 자기 생각을   있는 능력이다.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진정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로 인해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열등감과 무력감의 뿌리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격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므로 나다운 나를 지킬 수 없으며, 이렇게 자아가 상실된다.

이 책 내용대로라면 위에서 언급한, "남(회사 문화, 상사)이 바라는 나로 일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이 자체가 내 입장에서는 자아가 상실된 셈이다.

 

또한 이 책는 내가 한창 괴로웠던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책에 실제로 나온 순서와 상관없이 연관있는 내용끼리 묶었다.

나는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어떤 것도 움직일 수 없으며 나의 의지로는 외부 세계나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아무도 나를 진지하게 대우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공기와 같다.

무력감은 자신에 대한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난 원래 그래. 그러니까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이들은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자력으로 무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자신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확신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을 통제할 수도 없고, 그들이 자신이 바라는 일을 하게끔 만들 수도 없다.

이 사람들은 누군가 그를 사랑하거나 좋아하도록 만들기 위해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무력감의 또 다른 중요한 결과는 공격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중략) 부당하건 정당하건 자신을 향한 모든 비난• 비판을 그냥 감수하고 반론을 펼치지 못한다. 때로 그런 일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 때도 있지만 방어하기 위한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부당하게 비난• 비판당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조차 없고, 모든 비난•비판을 정당하다고 느낀다. 심지어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마지막 부분은 뭔가 떠오르는 단어가 있지 않은가? 나는 이게 가스라이팅이구나 라고 느꼈다. 그런데 내가 이런 상황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상황인 걸 회사에 공유하지 않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특정 상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그로 인해 업무를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성을 잃었으며 심각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고 여러 군데에 도움을 청해보았지만 적극적으로 대해준 곳은 없었다. 그저 '번아웃이 왔나보다' 정도가 그나마 가장 긍정적으로 얻은 피드백이었다. 하지만 난 분명히 번아웃 상태는 아니었다.

 

그렇게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프롬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무력감을 완전히 깨달을 때 생겨나는 정신적 고통은 아무리 과대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깊은 공포, 인생의 무의미함을 규칙적으로 느낀다.

 

아무도 나의 고통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때 오직 프롬만이 당시의 나를 이해해주었다. '깊은 공포, 인생의 무의미함' 이것만큼 당시의 나를 축약할 수 있는 표현은 없었다.

 


 

그렇다면 무기력에서 탈출해서 진짜 삶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는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면 좋을 것 같다. 사실 꼭 이 책이 아니어도 된다. 다음에 소개할 이 책에서 얻어도 된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구입하기 전에 고민했던 게 있었다. 에리히 프롬의 책을 검색하다보니 이 책도 발견하게 됐는데 목차를 보니 여기에서도 무기력(정확히는 무력감)을 다루고 있었

kim-lotus-root.tistory.com

 

이 책의 이야기까지 읽어보시고 판단해보시길.